트럼프, 온실가스 '공중보건 위험' 판정 뒤집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시대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 근거였던 '위험성 판정'을 뒤엎으며 미국 기후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다. 환경단체들은 법정 투쟁을 예고했다.
2009년 어느 겨울날, 오바마 행정부의 환경보호청(EPA)은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포함한 6개 온실가스가 "공중보건에 위험하다"고 공식 판정한 것이다. 이 한 줄의 문장이 이후 15년간 미국 연방정부의 모든 기후정책을 떠받치는 법적 기둥이 됐다.
그런데 2025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판정을 완전히 뒤엎었다. 백악관은 이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규제 철폐"라고 자평했다.
무너진 기후정책의 법적 토대
트럼프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2009년 판정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소비자 가격을 대폭 올린 재앙적인 오바마 시대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의 기후 의제를 "역사상 최대 사기 중 하나인 그린 뉴 스캠"이라고 비난했다.
이 '위험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 연방법상 EPA가 특정 물질을 규제하려면 그것이 공중보건에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2009년 판정이 바로 그 근거였다.
전 EPA 및 법무부 변호사인 메건 그린필드는 "위험성 판정이 미국 온실가스 규제의 핵심축 역할을 해왔다"며 "자동차뿐 아니라 발전소, 석유·가스 부문, 매립지 메탄, 심지어 항공기까지 모든 부문의 기준이 이 하나의 판정에 근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계산의 엇갈린 시각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철회로 1조 달러 이상을 절약하고 에너지·교통비를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리비트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량당 2,400달러씩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정반대 계산을 내놨다. 환경방어기금의 피터 잘잘은 "미국인들이 연비가 낮고 오염이 심한 차량 때문에 약 1조 4,000억 달러의 추가 연료비를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최대 5만 8,000명의 조기 사망과 3,700만 건의 천식 발작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연비 규제가 완화되면 해외 판매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 기후법 전문가 마이클 제라드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 자동차를 사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의도치 않은 결과들
흥미롭게도 이번 철회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2009년 판정을 이용해 각 주정부가 더 엄격한 탄소 배출 규제를 만드는 것을 막아왔다. 또한 개인이나 단체가 기후변화를 이유로 제기하는 '공해 소송'도 차단해왔다.
그린필드 변호사는 "위험성 판정이 수많은 소송을 막아왔고, 원고들의 주장을 법정 밖으로 내모는 데 꽤 강력한 역할을 했다"며 "이제 주정부와 비영리단체들이 주로 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새로운 법적 경계가 어디인지 알아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학 vs 정치의 대결
이번 철회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과학적 근거다. 에너지부는 작년 온실가스의 온난화 영향에 대한 널리 받아들여지는 과학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과학자 패널을 구성했다. 이 보고서가 2009년 판정 철회 제안의 토대가 됐다.
하지만 많은 기후 전문가들은 이 패널이 대표성이 없고 인간의 온난화 영향에 회의적인 사람들로 채워졌으며, 보고서 내용이 부정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연방 판사는 최근 에너지부가 이 특별 선발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을 향한 승부수
많은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법정 도전을 유도하고 있다고 본다. 트럼프 임기가 끝나기 전에 대법원에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린필드는 "이번에는 EPA가 아예 이 영역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영구적으로 그렇게 하려 한다"며 "만약 그들이 대법원에서 승리한다면, 새로운 법률 없이는 새 행정부도 이 입장을 바꿀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환경단체들은 이미 법정 투쟁을 예고했다. 하지만 현재 보수 성향이 강한 대법원 구성을 고려할 때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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