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비트코인 지갑이 털릴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현재 암호화폐를 보호하는 타원곡선 암호를 깰 경우, 3,000조 원 이상의 디지털 자산이 위험에 처한다. 그런데 이주 기간은 최소 10년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을 지키는 자물쇠를 바꾸는 데 10년이 걸린다. 그런데 그 자물쇠가 4년 안에 뚫릴 수 있다.
양자컴퓨팅 보안 전문 기업 Project Eleven이 지난 5월 9일 발표한 11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는 이 불편한 산수를 정면으로 꺼냈다. 보고서의 결론은 단순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Q-Day'란 무엇이고, 언제 오는가
보안 업계에서 'Q-Day'는 양자컴퓨터가 현재 인터넷 보안의 근간인 공개키 암호 체계를 실질적으로 깰 수 있는 날을 뜻한다. Project Eleven은 이 시점이 이르면 2030년, 늦어도 2033년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비트코인, 이더리움,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사실상 모든 디지털 자산은 '타원곡선 디지털 서명(ECDSA)'으로 보호된다. 문제는 양자컴퓨터가 '쇼어 알고리즘(Shor's Algorithm)'을 사용하면 공개키에서 개인키를 역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갑 주소만 알면 그 안의 자산을 빼낼 수 있게 된다.
피해 규모는 단순한 암호화폐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보고서는 같은 공개키 암호 체계가 은행 시스템, 클라우드 인프라, 군사 통신, 디지털 인증 네트워크 전반에 쓰인다고 지적한다. 비트코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이 취약점에 노출된 디지털 자산 규모만 3조 달러(약 4,100조 원) 이상이다.
왜 이주가 이렇게 어려운가
기술적 해법 자체는 이미 존재한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지난해 양자 내성 암호(PQC) 표준을 발표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조율이다.
보고서는 "격차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격차는 전적으로 조율, 긴박감, 그리고 이주 비용을 감수하려는 의지의 문제"라고 명시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하다. 네트워크 업그레이드는 사용자, 거래소, 수탁기관, 지갑 제공업체, 채굴자 모두가 동시에 전환해야 한다. 2015~2017년 진행된 'SegWit' 업그레이드는 비교적 작은 변경이었음에도 2년 이상 걸렸고, 체인 분열이라는 정치적 갈등을 낳았다. 양자 내성 암호로의 전환은 그보다 훨씬 큰 변화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잠자는 비트코인'이다. 나카모토 사토시를 포함한 초기 보유자들의 지갑처럼 공개키가 이미 노출된 560만~690만 BTC(현재 시세 기준 약 500억 달러, 약 70조 원)는 Q-Day가 오면 가장 먼저 공격 대상이 된다. Project Eleven CEO Alex Pruden은 이 물량을 양자 공격자가 쓸어가도록 두기보다 비트코인 공급 곡선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제안은 즉각 논란을 낳는다. 비트코인의 핵심 철학인 '재산권 불가침'과 '고정 공급량'에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보안 업계가 주목해야 할 이유
국내에서도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 LG CNS, 카카오뱅크, 토스 등 국내 주요 금융·IT 기업들이 사용하는 보안 인프라 역시 같은 공개키 암호 체계에 기반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이미 양자 내성 암호 전환 로드맵을 수립 중이지만, 민간 영역의 전환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빗썸 등이 보관하는 자산 역시 동일한 취약점 위에 있다. 거래소들이 양자 내성 암호 전환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례는 아직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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