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이란이 '통행료'를 요구한다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비적대국' 선박에만 통행을 허용하는 요금제 도입을 시사했다. 전 세계 원유 수송의 20%가 지나는 이 해협이 막히면, 한국 경제는 어디서부터 흔들리는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지나는 길목이 있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폭 33킬로미터의 해협, 호르무즈다. 이란이 이 길목에 요금소를 세우겠다고 시사하고 있다.
이란이 꺼낸 카드
테헤란은 최근 '비적대국' 선박에 한해 통행료를 부과하고 통행을 제한하는 방안이 현재의 전쟁 상황을 넘어 지속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구체적인 요금 수준이나 '적대국' 분류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발언의 방향은 분명하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정학적 협상 카드로 영구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통과하는 에너지 동맥이다. 하루 평균 1,700만 배럴의 원유가 이 해협을 지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들이 이 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출한다. 이란이 밸브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란이 해협 봉쇄나 통제를 위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서방의 핵 제재 국면에서도, 2019년 미-이란 긴장이 고조될 때도 비슷한 위협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이 다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지될 수 있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일시적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선언하는 뉘앙스다.
한국 경제, 어디서 흔들리나
한국은 에너지 자원의 93%를 수입에 의존한다. 그 중심축이 중동 원유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절대다수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온다. 이란이 말하는 '비적대국'에 한국이 포함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대이란 제재에 동참해온 나라다.
만약 통행료가 현실화되거나, 더 나아가 통행 자체가 제한된다면 파장은 단순히 주유소 기름값 인상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제철, 포스코 같은 철강사들의 에너지 비용이 오르고, 한국전력의 연료비 부담이 커지며,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진다. 석유화학 원료 가격 상승은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의 수익성을 직격한다. 항공유 가격 상승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비용 구조를 흔든다.
국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한국의 연간 수입 비용은 약 60억 달러(약 8조 원) 늘어난다는 추정치도 있다. 호르무즈 봉쇄 시나리오에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유가가 단기에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본다.
누가 웃고, 누가 우나
에너지 가격 급등의 수혜자는 의외로 가깝다. 러시아는 이미 서방 제재로 중동 의존도를 낮춘 아시아 국가들에게 원유를 팔고 있다. 호르무즈 통제가 강화될수록 러시아산 원유의 대안 가치는 올라간다.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업체들도 유가 상승의 수혜를 입는다.
반면 중동 원유에 크게 의존하는 인도, 중국, 일본, 한국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이 '비적대국'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조차 공급 불안과 가격 급등이라는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산유국들도 마냥 웃을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수출 통로가 막히면 자국 경제가 직접 타격을 받는다. 이란의 카드는 '나도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배수진이기도 하다.
대안 루트의 현실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루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은 하루 500만 배럴을 홍해 쪽으로 보낼 수 있다. UAE도 아부다비에서 오만만 쪽으로 직접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우회 용량은 현재 해협을 통과하는 물동량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안이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한국은 약 100일 분량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단기 충격은 흡수할 수 있지만, 장기 공급 차질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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