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의회 의석을 산다?
캘리포니아 CA-17 선거구에서 테크 창업자 에단 아가왈이 5선 현역 로 칸나에 도전. 억만장자 세금 반대가 불붙인 이 레이스, 이미 진흙탕이 됐다.
선거일은 6월 초인데, 벌써 진흙탕이다.
캘리포니아 17선거구(CA-17)에서 5선 현역 하원의원 로 칸나에 맞서 테크 창업자 에단 아가왈이 출마한 지 채 한 달도 안 됐다. 그런데 이미 언론사들에 익명의 소포가 날아들고 있다. 안에는 아가왈의 법적 전력을 담은 법원 문서들이 들어 있다.
왜 이 싸움이 시작됐나
아가왈이 출마를 선언한 건 올해 3월이다. 명분은 하나였다. 칸나가 캘리포니아 주민 중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 보유자에게 일회성 5% 세금을 부과하는 주민투표안을 공개 지지했다는 것. 억만장자 증세안에 반발한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아가왈 뒤에 줄을 섰다. 투자자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를 비롯한 저명한 테크 억만장자들이 그의 주요 후원자로 이름을 올렸다.
아가왈은 출마 직후부터 칸나를 공격했다. 무기는 재임 중 주식 거래 내역. 현직 의원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기업들의 주식을 사고팔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역공이 들어왔다.
익명 소포 속 문서들
언론사들에 전달된 파일에는 세 가지 법적 사안이 담겨 있다.
첫째,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의 저작권 분쟁. 아가왈의 회사 Aaptiv는 음악과 오디오 코칭을 결합한 운동 앱이었는데, UMG는 이 앱이 자사 음원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200만 달러 합의 후 아가왈은 개인 보증까지 섰다. 그런데 마지막 3개월을 남기고 납부를 중단했다. 결국 68만 3,000달러의 개인 판결이 내려졌고, 이후 양측은 재합의했다. 이 건이 파일에서 가장 실질적인 사안이다.
둘째, 뉴욕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무실 임대료 분쟁. 코로나 시기 Aaptiv가 임대 계약을 포기하자 건물주가 약 200만 달러 소송을 냈다. 이 건은 이후 취하됐다.
셋째, 2019년 연방 소송. 아가왈의 IP 주소에서 성인 콘텐츠가 다운로드됐다는 혐의다. 소송을 제기한 말리부 미디어는 전국 수천 개의 IP 주소를 상대로 거의 동일한 소송을 반복 제기해 '법적 갈취'라는 비판을 받아온 회사다. 이 건은 법원의 책임 판결 없이 합의로 종결됐다.
아가왈의 대응: 선제 공개
흥미로운 건 아가왈의 반응이다. 뉴욕포스트가 "실리콘밸리 테크 후보, 포르노 다운로드로 피소"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내자, 아가왈은 이 기사를 직접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이렇게 썼다.
"정치 후보자에게 투명성과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네, 창피합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은 제 최악의 것을 알았습니다."
팔리하피티야는 곧바로 트위터에 아가왈을 향해 이렇게 썼다. "야당 조사가 시작된 거야. 네가 이길 수도 있으니까. 로가 걱정하기 시작한 거지."
돈과 정치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
이 선거를 단순한 지역구 레이스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CA-17은 실리콘밸리 심장부, 쿠퍼티노와 서니베일을 포함한 선거구다. 애플 본사가 있는 곳이다.
칸나는 진보 성향이지만 테크 산업에 우호적인 의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억만장자 증세안 지지 하나로 실리콘밸리 자본의 집중 타깃이 됐다. 아가왈의 캠페인은 어떤 의미에서 테크 부호들의 정치적 의지를 테스트하는 실험대다. 억만장자 세금에 반대하는 억만장자들이, 그 세금에 반대하는 후보를 직접 키워내는 구조.
한국 독자들에게 이 구도가 낯설지 않을 수 있다. 재벌과 정치권의 관계, 대기업 오너들의 정계 진출 시도, 자본과 입법권 사이의 긴장. 미국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은 그 미국판 버전이다. 다만 여기서는 테크 억만장자들이 훨씬 더 노골적으로 움직인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익명 소포의 발신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가왈 측은 칸나 캠프를 의심하고, 칸나 측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법적 문서들 자체는 공개 기록이다. 누군가 그것을 편집해 배포한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아가왈의 법적 전력 중 UMG 저작권 합의 불이행은 실질적인 문제다. 개인 보증을 서고도 마지막 순간에 납부를 멈춘 것은 재정 관리 능력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반면 말리부 미디어 소송은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남소(濫訴)의 일부였다는 맥락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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