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투자자가 연준 의장 된다면
미 상원이 케빈 워시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이사로 51대 45로 인준했다. 암호화폐·블록체인 투자 이력을 가진 그가 의장직까지 오를 경우, 미국 통화정책과 디지털 자산 규제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
제롬 파월의 8년 임기가 이번 주 금요일 끝난다. 그 자리를 채울 인물은 모건스탠리 출신 뱅커이자, 비트코인 인프라·레이어1 블록체인·예측 시장에 투자했던 56세 남성이다.
상원 문턱을 넘다
미국 상원은 5월 12일(현지시간) 케빈 워시를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이사로 51대 45 표결로 인준했다.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건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존 페터먼 한 명뿐이었다. 사실상 공화당 단독 처리다.
이사 인준은 첫 관문이다. 워시가 실질적인 권력을 쥐려면 의장 인준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상원 표결은 이르면 수요일(13일)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 임기는 14년, 의장 임기는 4년이다. 파월은 의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연준 본부 리모델링 관련 연방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사로 잔류할 계획이다.
워시가 의장이 되면 마주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이란 전쟁과 에너지 가격 급등이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금리 경로에 대한 시장의 촉각은 어느 때보다 곤두서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가 통화정책을 쥔다면
워시에 대한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그의 크립토 이력이다. 정부윤리국에 제출된 재정공개 서류에 따르면 그는 탈중앙화 금융(DeFi), 암호화폐 결제, 토큰화 네트워크와 연관된 블록체인·디지털 자산 기업들에 벤처펀드와 사모 투자 형태로 노출돼 있었다. 비트코인 인프라, 레이어1·레이어2 블록체인, 예측 시장 관련 기업들이 포함됐다. 그는 인준을 조건으로 대부분을 매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이력이 중요한 이유는 타이밍이다. 연준은 지금 스테이블코인 규제, 은행의 암호화폐 수탁 허용 여부, 디지털 결제 시스템 연구 등 디지털 자산과 관련된 굵직한 정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수십 년간 달러 패권의 수호자 역할을 해온 기관의 수장이, 그 달러의 대안을 표방해온 생태계를 직접 경험한 인물이 된다는 것이다.
누가 웃고, 누가 긴장하나
이해관계자들의 셈법은 제각각이다.
크립토 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규제 당국의 수장이 블록체인 생태계를 '내부에서' 이해하는 인물이라는 점은, 그간 불확실성에 시달려온 업계에 호재로 읽힌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나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를 준비 중인 은행들은 규제 완화 기대를 품을 수 있다.
반면 전통 금융권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다른 각도에서 본다. 연준 의장의 첫 번째 임무는 인플레이션 관리와 금융 안정이다. 디지털 자산 친화적 성향이 통화정책 독립성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워시가 과거 투자를 매각한다 해도, 그 네트워크와 세계관까지 청산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맥락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파월에게 금리 인하를 압박해왔다. 워시가 의장이 된다면, 그가 백악관의 기대에 독립적으로 맞설 수 있는지가 시장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민주당이 45표를 결집해 반대한 것도 단순히 인물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연준 독립성을 둘러싼 정치적 신호로 읽힌다.
한국 입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결정이 원·달러 환율과 자본 흐름에 직결되는 만큼, 새 의장의 통화정책 노선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블록체인 기업들은 미국의 스테이블코인·수탁 규제 방향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굳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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