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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에서 성자 후보까지, 미국 최초 흑인 신부의 놀라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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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에서 성자 후보까지, 미국 최초 흑인 신부의 놀라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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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노예로 태어나 미국 최초 흑인 신부가 된 아우구스투스 톨턴의 이야기. 제도적 차별을 뚫고 성자 후보까지 오른 그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1854년 미주리주에서 노예로 태어난 한 아이가 32년 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개적으로 흑인임을 밝힌 가톨릭 신부, 아우구스투스 톨턴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19세기 미국 가톨릭교회가 흑인 남성의 사제 서품을 체계적으로 막았던 현실과, 그 벽을 뚫고 나온 한 개인의 의지가 만든 역사적 순간이다. 지금 그는 성인 후보로 추진되고 있다.

담배공장 소년이 수석졸업생이 되기까지

톨턴의 어린 시절은 끊임없는 이동과 차별의 연속이었다. 1863년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노예제에서 탈출한 그는 일리노이주 퀸시에 정착했지만, 통합 공립학교와 가톨릭 교구 학교 모두에서 괴롭힘과 차별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담배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하지만 겨울철 공장이 문을 닫는 동안,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피터 맥기어 신부가 그를 백인 전용 교구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했다. 논란이 많았지만 톨턴은 굴복하지 않았다.

세인트 프란시스 솔라누스 대학(현 퀸시 대학교)에서 신부들의 개인 지도를 받은 그는 1880년 수석졸업생이 되었다. 탄산음료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를 익힐 정도로 그의 학습 능력은 뛰어났다.

미국이 거부한 꿈, 로마에서 이뤄지다

신부가 되고 싶었던 톨턴은 미국 내 모든 신학교에서 거절당했다. 바티칸은 흑인 남성의 서품을 허용했지만, 미국 교회 위계질서는 "당시 인종차별 교리에 내적으로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런던의 밀힐 선교회조차 그를 거부했다.

당시 미국에 있던 흑인 가톨릭 신부들은 모두 혼혈로서 백인으로 행세하며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공개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1873년부터 1882년까지 조지타운 대학교 총장을 지낸 패트릭 힐리였다.

결국 톨턴은 로마로 떠났다. 1886년 부활절 토요일, 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집전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견될 예정이었지만, 대신 미국으로 보내졌다. 훗날 그가 회상했듯이 "미국에서 유일한 흑인 신부가 될 것이며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말을 들었다.

'착한 거스 신부'의 성공과 고독

고향 퀸시로 돌아온 톨턴의 미사는 만석이었다. 주변 지역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와 미국 최초의 흑인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를 보려 했다. '착한 거스 신부'로 불린 그는 "유창하고 우아한 화법"과 "예외적으로 감미로운 노래 실력"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성공에는 대가가 따랐다. 흑인 개신교 목사들은 교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우려했고, 백인 가톨릭 신부들은 처음엔 환영했지만 "너무 많은 백인들이 다른 교구에서 내 교회로 온다"며 질투를 드러냈다.

1889년 시카고로 이주한 톨턴은 흑인 가톨릭 공동체를 위한 선교사로 활동하며 성 모니카 교회를 설립했다. 당시 "서부에서 유색인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세운 유일한 가톨릭 교회"로 묘사된 곳이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1895년 잠시 휴직했던 톨턴은 1897년 폭염 속에서 길거리에 쓰러져 다음 날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파

톨턴의 죽음 10년 후, 그가 지원했던 밀힐 선교회는 흑인 남성 찰스 랜돌프 언클스를 받아들였다. 1902년존 헨리 도시가 두 번째 미국 흑인 신부로 서품받았다.

2019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톨턴의 시성 절차를 진전시켜 그를 '가경자 아우구스투스 톨턴'으로 공식 인정했다. 시복과 시성을 위해서는 기적의 증거가 필요하며, 시카고 대교구와 바티칸이 이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 내 완전한 평등은 여전히 요원하다. 흑인 여성들은 오랫동안 수도회 가입이 거부되어 19세기 중반 자체 수도회를 만들어야 했다. 미국에서 흑인 추기경이 탄생한 것은 2020년윌턴 그레고리가 워싱턴 D.C. 추기경으로 임명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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