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이 AI 기업을 '안보 위협'으로 지정한 진짜 이유
앤트로픽이 미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군의 무제한 AI 사용을 거부한 것이 '국가 안보 위협'이 될 수 있을까? 법정 선서 진술서가 드러낸 협상의 민낯.
협상 중이던 두 당사자, 법정에서 만나다
협상 테이블에서 "거의 합의에 근접했다"던 상대방이, 하루 뒤 공개 석상에서 "협상은 없다"고 선언한다면? 그리고 그 직후 당신의 회사가 '국가 안보에 대한 수용 불가한 위협'으로 공식 지정된다면?
이것이 앤트로픽이 미 연방법원에 제출한 선서 진술서를 통해 주장하는 사건의 경위다. 2026년 3월 21일, 앤트로픽은 국방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두 건의 핵심 선서 진술서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출했다. 오는 3월 24일 화요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 판사 리타 린 앞에서 심리가 열릴 예정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앤트로픽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앤트로픽이 군의 AI 기술 무제한 사용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단순한 계약 파기가 아니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최초로 미국 기업에 적용된 '공급망 위험 지정'이라는 전례 없는 조치로 이어졌다.
진술서가 드러낸 것들
앤트로픽이 제출한 두 진술서의 핵심 내용은 각각 다른 차원의 반박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진술서는 앤트로픽 정책 총괄 사라 헥이 작성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NSC) 출신으로, 현재 앤트로픽의 정부 관계 및 정책 업무를 총괄한다. 그는 2월 24일 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헤그세스 장관, 에밀 마이클 국방부 차관과 직접 만난 자리에 배석했던 당사자다.
헥의 진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타임라인이다. 국방부가 공급망 위험 지정을 공식화한 다음 날인 3월 4일, 에밀 마이클 차관은 다리오 아모데이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율 무기"와 "미국인 대규모 감시" 두 가지 쟁점에서 양측이 "매우 근접했다"고 썼다. 국방부가 바로 이 두 가지를 앤트로픽이 국가 안보 위협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그 쟁점들에서 말이다.
그런데 3월 5일, 아모데이는 협상이 "생산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성명을 냈다. 3월 6일, 마이클 차관은 X(구 트위터)에 "국방부와 앤트로픽 간에 진행 중인 협상은 없다"고 올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는 CNBC에 재협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헥의 반박은 단순하다. 만약 앤트로픽의 입장이 정말로 국가 안보 위협이라면, 왜 지정이 공식화된 직후에도 "거의 합의"를 말했는가?
두 번째 진술서는 기술적 반박이다. 앤트로픽 공공부문 총괄 티야구 라마사미는 아마존 웹서비스(AWS)에서 6년간 정부 AI 배포를 담당했던 전문가다. 그는 국방부가 우려하는 "앤트로픽이 군사 작전 중 기술을 비활성화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는 주장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클로드 모델이 제3자 계약업체가 운영하는 정부 보안 "에어갭" 시스템에 배포되면, 앤트로픽은 해당 시스템에 어떠한 접근도 할 수 없다. 원격 종료 스위치도, 백도어도, 무단 업데이트 메커니즘도 없다. 모델 변경은 반드시 국방부의 명시적 승인과 직접 설치 행위가 필요하다. 앤트로픽은 정부 사용자가 시스템에 무엇을 입력하는지조차 볼 수 없다.
왜 지금 이 소송이 중요한가
이 사건은 단순한 계약 분쟁이 아니다.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첫째, AI 안전 정책이 법정 쟁점이 된 최초 사례다. 앤트로픽의 소송 논리는 명확하다. 공급망 위험 지정은 AI 안전에 관한 회사의 공개적 견해에 대한 정부의 보복이며, 이는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 위반이라는 것이다. AI 기업이 자사의 안전 정책을 이유로 정부 계약에서 배제될 수 있다면, 다른 AI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둘째,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이미 체결된 상태다. 앤트로픽은 지난여름 국방부와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 바로 라마사미가 이끈 팀이다. 즉, 이 소송은 이미 진행 중인 국방부-앤트로픽 관계의 갑작스러운 파국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셋째,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 AI 기업들에게도 선례가 된다. 미국 정부가 자국 AI 기업에 군사적 무제한 사용을 요구할 수 있다면, 동맹국 기업들에게는 어떤 조건을 제시할 것인가? 삼성, 네이버, 카카오 등 한국 AI 기업들이 미국 정부 또는 군과 협력 관계를 맺을 때, 이번 판례는 직접적인 참고점이 된다.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
국방부 입장: 정부는 40페이지 분량의 반박 서면에서 앤트로픽의 거부를 사업적 결정으로 규정한다. 모든 합법적 군사 용도에 기술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은 보호받는 표현이 아니라 계약 거부라는 논리다. 자율 무기와 대규모 감시에 관한 앤트로픽의 입장이 군의 작전 유연성을 제한한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AI 안전 진영: 앤트로픽이 이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AI 안전 정책을 고수하는 기업은 정부 계약 시장에서 사실상 배제될 수 있다. 반대로 승소한다면, AI 기업이 자사 기술의 사용 방식에 대해 정부와 협상할 권리가 법적으로 확립된다.
투자자/산업 관점: 앤트로픽의 기업 가치는 현재 수백억 달러 규모로 평가된다. 이 소송의 결과는 AI 기업들이 정부 계약을 수주할 때 어느 정도의 사용 조건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는 오픈AI, 구글, 메타 등 모든 주요 AI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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