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가 막히면, 삼성 공장도 멈춘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반도체 핵심 소재인 헬륨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삼성·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의 생산 차질 가능성과 그 파장을 짚는다.
반도체 공장에서 가장 조용한 소재가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색도 없고 냄새도 없는 기체, 헬륨. 웨이퍼를 식히고, 공정 중 불순물을 차단하는 데 쓰이는 이 가스가 없으면 최첨단 반도체 라인은 단 하루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그 헬륨이 오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가 막힌 날, 공급망이 흔들렸다
이란과 이스라엘·미국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봉쇄 상태에 들어갔다.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의 약 20%, 그리고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에서 생산되는 헬륨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항로가 막히자 LNG 탱커들은 항로를 바꾸기 시작했고, 아시아향 현물 가격은 급등했다.
한국과 대만은 이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두 나라는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 축이면서, 동시에 에너지와 원자재의 대외 의존도가 극도로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동하는 반도체 팹(fab)은 헬륨을 포함한 특수 가스를 대부분 중동산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헬륨은 대체재가 마땅치 않다. 우주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원소지만, 지구에서 경제성 있게 추출할 수 있는 곳은 미국·카타르·러시아·알제리 등 소수에 불과하다. 그 중 카타르산 헬륨은 호르무즈를 거쳐 아시아로 온다. 우회로는 있지만, 비용과 시간이 몇 배로 뛴다.
'조용한 소재'의 존재감
반도체 업계에서 헬륨은 눈에 띄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재다. 웨이퍼 식각(에칭) 공정, 광섬유 제조, MRI 기기 냉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인다. 특히 7나노 이하 첨단 공정일수록 공정 중 온도와 불순물 관리가 더 정밀해야 하기 때문에 헬륨 소비량도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통상 2~3개월치 헬륨 재고를 확보해두지만,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이 버퍼가 얼마나 버텨줄지 불확실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러시아산 헬륨 공급이 일시 차질을 빚으며 반도체 업계가 긴장했던 전례가 있다. 당시는 비교적 단기에 수습됐지만, 이번 호르무즈 봉쇄는 지리적으로 더 광범위한 공급망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
LNG 문제도 겹친다. 한국은 전력의 상당 부분을 LNG 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반도체 팹은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LNG 가격 급등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생산 원가 압박으로 직결된다.
승자와 패자
이 위기에서 웃는 쪽도 있다. 미국 내 헬륨 생산 업체들은 가격 상승의 수혜를 받는다. 미국은 세계 최대 헬륨 생산국으로, 텍사스와 캔자스 일대 가스전에서 헬륨을 추출한다. 호르무즈 봉쇄가 길어질수록 미국산 헬륨의 가격 협상력은 높아진다.
반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은 이중고에 처한다. 원자재 조달 비용이 오르는 동시에, 완성된 반도체를 실어나를 해운 물류도 불안정해졌다. 고객사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납기 지연을 용납할 여유가 없다는 점도 압박 요인이다.
한국 정부는 유류세 인하와 연료비 상한제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이는 소비자 물가 방어에 초점을 맞춘 조치다. 반도체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는 단기 처방이 없는 구조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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