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제2의 이라크가 될 것인가
이란이 이라크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핵 협상 교착, 경제 제재, 내부 균열—중동의 화약고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2003년 이라크를 기억하는가. 제재로 무너진 경제, 고립된 정권, 그리고 결국 외부의 충격 하나로 산산조각 난 국가. 지금 일부 분석가들은 같은 질문을 이란에 던지고 있다. “다음은 이란인가?”
왜 이란인가, 왜 지금인가
이란은 오랫동안 ‘위기의 상수’였다.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은 주기적으로 고조된다. 그런데 2026년 현재, 이 긴장의 질감이 달라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이 재가동됐다. 석유 수출 제재가 다시 강화되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은 급감했고, 리알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을 오가고 있다. 국내 물가 상승률은 40% 안팎을 맴돌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은 25%를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이미 국가 기능의 일부가 마모되고 있다는 신호다.
여기에 더해 이란의 핵심 동맹 구도도 흔들리고 있다. 하마스는 가자 전쟁으로 사실상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집중 공세로 지도부가 대거 제거됐다. 이란이 수십 년간 공들여 구축한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와의 닮은꼴, 그리고 다른 점
이라크 붕괴의 전조는 세 가지였다. 외부의 지속적 압박, 내부의 균열, 그리고 대안 세력의 부재. 이란은 지금 이 세 조건을 얼마나 충족하고 있을까.
외부 압박은 분명하다. 제재는 이란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고, 이스라엘의 군사 옵션은 테이블 위에 항상 올라와 있다. 내부 균열도 심화되고 있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 이후 촉발된 대규모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진압됐지만,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특히 20~30대 젊은 세대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체제 사이의 정당성 균열은 봉합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이란은 이라크가 아니다. 이라크는 2003년 당시 사담 후세인 개인에 대한 충성 구조로 이루어진 취약한 국가였다. 반면 이란은 혁명수비대(IRGC)라는 독자적 군사·경제 복합체이 있다. 이 조직은 이란 GDP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며, 어떤 외부 충격에도 체제를 방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단순한 군대가 아니라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다.
이해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셈법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은 입장마다 다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능력이 ‘레드라인’을 넘기 전에 군사적으로 무력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미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 시나리오를 공개적으로 언급해왔다. 반면 유럽연합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법을 선호한다. 이란이 붕괴할 경우 밀려올 난민 물결과 에너지 시장 충격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이란은 두 나라 모두에게 서방 주도 질서에 대한 전략적 완충재다. 특히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으로, 이란 경제가 버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에너지 시장 투자자들에게 이란은 곧 호르무즈 해협이다.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 좁은 수로를 통과한다. 이란이 불안정해질수록, 유가는 예측 불가능해진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이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곧 국내 에너지 가격과 직결된다.
시나리오: 붕괴인가, 교착인가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극적 붕괴도, 극적 해결도 아닌 ‘만성적 교착’이다. 이란 체제는 경제적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버티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지난 40년 이상 제재와 고립 속에서도 정권이 유지된 것은 이 구조의 내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하메네이의 건강 문제와 후계 구도 불확실성, 핵 협상의 완전한 결렬, 또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촉발하는 전면적 충돌. 이 중 하나라도 현실화된다면, 이란은 통제된 위기를 넘어 걷잡을 수 없는 불안정으로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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