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비트코인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받는다
이란 경제부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비트코인으로 통행료를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제재 우회와 암호화폐가 만나는 지점, 그 파장을 짚는다.
세계 원유의 20%가 지나는 해협에서, 이제 통행료를 비트코인으로 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란 국영 매체 파르스 통신은 이란 경제부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통행 비용을 비트코인으로 결제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직 공식 발표나 시행 일정은 없다. 하지만 이 한 줄짜리 보도가 에너지 시장과 암호화폐 업계, 그리고 지정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왜 비트코인인가: 제재의 틈새를 노린다
이란은 현재 미국 주도의 금융 제재로 SWIFT 국제 결제망에서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달러는 물론이고, 유로화 결제조차 복잡한 우회로를 거쳐야 한다.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을 통한 수익 창출이 막혀 있는 구조다.
비트코인은 이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왔다. 중앙은행도, SWIFT도, 미국 재무부의 OFAC(해외자산통제국)도 개입할 수 없는 탈중앙화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미 2021년부터 비트코인 채굴을 국가 차원에서 허용하고, 채굴된 암호화폐로 수입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을 시범 운용해왔다. 이번 구상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1,700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병목 지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의 원유 수출 대부분이 이 해협을 거친다. 이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고 그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받겠다는 발상은, 단순한 결제 수단 변경이 아니라 제재 체제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읽힌다.
승자와 패자: 누구의 배가 흔들리는가
이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해운사들이다. 세계 주요 해운사들은 대부분 미국 달러로 운임을 정산하고, 미국 금융 시스템과 연결된 보험사들의 보증을 받는다. 이란에 비트코인으로 통행료를 납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OFAC 제재 위반으로 미국 시장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 이것이 핵심 딜레마다.
반면 이란 입장에서는 상당한 레버리지가 생긴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수로가 아니라 이란이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지정학적 카드다. 여기에 추적이 어려운 비트코인 결제를 결합하면, 제재를 우회하면서도 실질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경로가 열린다.
한국 입장에서도 무관하지 않다. HD현대,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들이 건조한 선박 상당수가 중동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사들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대부분도 이 해협을 거친다. 통행료 체계가 바뀌고 제재 리스크가 올라가면, 운임과 보험료 상승이 정유 비용에 반영될 수 있다.
현실 가능성: 아직은 구상 단계
냉정하게 보면, 이 계획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우선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문제다. 통행료를 비트코인으로 받는 순간, 이란은 암호화폐 시장의 등락에 수익이 연동되는 리스크를 떠안는다. 스테이블코인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미국 규제 당국의 영향권 아래 있다.
또한 이란이 실제로 해협 통행에 강제적인 통행료를 부과하려면, 국제 해양법상 '무해통항권'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란은 과거에도 해협 봉쇄 위협을 카드로 써왔지만, 실제 봉쇄는 곧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많았다.
파르스 통신 보도는 공식 정책 발표가 아니라 '검토 중인 계획'을 전한 것이다. 이란 내부에서도 강경파와 실용파 사이의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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