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굴욕'을 꺼내든 이유
트럼프의 군사 위협에 이란이 '무례하고 근거 없다'고 반박했다. 핵 협상 테이블 뒤에서 벌어지는 강대국의 심리전,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총부터 꺼내 든 셈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취하겠다고 경고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테헤란에서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왔다. 이란 외무부는 트럼프의 발언을 "무례하고 근거 없는 위협"이라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한 가지 단어를 꺼내 들었다. 굴욕.
이란 측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이미 '굴욕'을 당했으며, 위협적 언사는 그 굴욕을 만회하지 못한다고 했다. 외교적 언어치고는 이례적으로 감정이 실린 표현이다. 왜 지금, 왜 이 단어인가.
위협과 반박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이란을 향해 핵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역사상 유례없는 폭격"을 가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는 그가 2기 임기 초반부터 이란과의 직접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온 기조와 맞닿아 있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은 오만을 중재자로 삼아 간접 대화 채널을 열었고, 이르면 이달 중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런데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는 바로 그 시점에 군사 위협이 나왔다. 이란 입장에서는 협상 테이블로 오라는 초대와 폭격 경고가 동시에 날아온 셈이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를 "모순적이고 무례한 접근"이라고 표현했다.
이란의 반응에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테헤란은 협상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중을 전제로 한 대화'는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겼다. 강하게 밀면서도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 전형적인 협상 전 포지셔닝이다.
'굴욕'이라는 단어의 무게
이란이 미국의 '지역 내 굴욕'을 언급한 것은 단순한 감정적 수사가 아니다. 구체적 맥락이 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 2019년 이란의 미군 기지 미사일 공격 이후 미국의 제한적 대응,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에 대한 미국의 고전 — 이란은 이 모든 장면을 '미국의 억지력 약화' 증거로 해석해왔다. 테헤란의 논리는 이렇다. 위협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한계를 이미 목격했다.
동시에 이란 국내 정치도 작동하고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온건 개혁파로 분류되지만, 핵 문제에서 미국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면 강경 보수파에게 정치적 공격을 받는다. '굴욕'이라는 단어는 협상 상대방인 미국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내 청중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협상, 어디로 가나
현재 구도는 복잡하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미국이 협상에 집중하는 동안 독자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란은 현재 우라늄 농축 순도를 60% 수준까지 높인 상태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90%까지는 기술적으로 멀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적으로 이란은 압박을 받고 있다. 리알화 가치는 수년째 폭락 중이고, 물가는 서민 생활을 짓누르고 있다.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 숨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협상 유인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핵 프로그램은 이란 권력 엘리트에게 단순한 안보 수단이 아닌 정권 생존의 보험으로 인식된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을 포기한 뒤 어떻게 됐는지를 테헤란은 잊지 않았다.
한국 기업들에게도 이 협상의 향방은 무관하지 않다. 과거 이란 제재 완화 국면에서 현대, 기아, 삼성 등 국내 기업들은 이란 시장 진출을 적극 타진했다. 협상 타결 시 다시 열릴 수 있는 8,500만 인구의 시장이 저울 위에 올라있다. 반대로 군사 충돌로 이어질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한국의 에너지 수입 루트가 직격탄을 맞는다. 한국 원유 수입의 약 7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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