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 공백, 그 침묵이 말하는 것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장기 공석에 대해 관리들이 '건강하다'고 해명했다. 후계 불확실성이 이란 정치·경제·지역 안보에 미치는 파장을 분석한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을 때, 정부 관리가 내놓는 첫 마디는 언제나 같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낳는다.
이란 관리들이 최근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장기 부재에 대해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85세의 하메네이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후 1989년부터 최고지도자직을 맡아온 인물로, 대통령보다 위에 있는 실질적 최고 권력자다. 그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테헤란 안팎의 시선은 날카로워지고 있다.
'건강하다'는 말이 불안을 키우는 이유
이란 정치 시스템에서 최고지도자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군 통수권, 사법부 임명권, 핵 정책 최종 결정권까지 쥐고 있는 자리다. 하메네이가 공개 활동을 줄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전립선 수술을 받은 이후 건강 이상설은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그러나 이번 부재는 이란이 유례없이 복잡한 내외부 압박을 동시에 받는 시점과 겹친다.
밖으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최대 압박' 재가동으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다시 조여들고 있다. 안으로는 2022년마흐사 아미니 사망 이후 촉발된 반정부 시위의 여진이 사회 저변에 남아 있고, 경제는 리알화 가치 폭락과 40%대 물가상승률로 신음 중이다. 이런 시기에 최고 권력자의 '침묵'은 단순한 건강 문제 이상의 의미로 읽힌다.
후계 문제: 이란의 가장 큰 미지수
하메네이 이후를 둘러싼 논의는 이란에서 공개적으로 꺼내기 어려운 금기에 가깝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미 몇 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있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이름은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다. 종교적 자격 요건을 갖췄고 혁명수비대(IRGC)와의 관계도 긴밀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성직자 집단 내부에서는 세습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이란 혁명의 이념적 토대가 군주제 타파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지도자 위원회(전문가 회의)가 집단 지도 체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권력 공백기가 길어지고, 혁명수비대가 그 공백을 채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이 사실상의 최고 권력으로 부상하는 시나리오다.
원유 시장과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이유
이란의 권력 불확실성은 지정학적 관심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란은 OPEC 3위 산유국으로, 하루 약 320만 배럴을 생산한다. 후계 혼란이 현실화될 경우 이란 핵협상 재개 가능성은 더 낮아지고, 중동 지역 긴장은 높아진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약 20%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이 문제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며, 현대오일뱅크,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 가격 변동에 직접 노출돼 있다. 이란 핵 합의가 재개되면 원유 공급이 늘어 국제유가가 안정될 수 있지만, 반대로 이란 내부 혼란이 가중되면 유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각자의 셈법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불안정을 기회로 볼 수 있다. 강력한 지도부가 없는 이란은 핵 프로그램 가속화보다 내부 결속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불안정한 이란이 예멘의 후티 세력이나 레바논 헤즈볼라를 통해 더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딜레마다. 이란 내부 혼란은 협상 상대방을 불분명하게 만들어 핵 협상 자체를 더 어렵게 한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으로, 이란 정치 안정을 원하지만 공개적으로 개입하기는 부담스럽다.
이란 국민의 시각은 또 다르다. 하메네이 체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권력 교체가 개혁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와 더 강경한 강압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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