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TV 독과점 규제, 20년 만에 무너지나
트럼프 행정부가 2004년부터 유지된 미국 방송 독과점 규제를 해제하려 한다. 한 회사가 전국 TV 시청 가구의 39%를 초과해 장악하지 못하도록 막아온 이 규칙이 사라지면 미디어 권력 지형은 어떻게 바뀔까?
39%. 숫자 하나가 20년 동안 미국 방송 시장의 천장이었다. 그 천장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2025년 초,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오면서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 자리에 브렌던 카가 앉았다. 그가 취임 직후 꺼내 든 카드는 탈규제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표적 중 하나가 바로 2004년부터 유지돼 온 '전국 시청 가구 39% 상한선' 규칙이다.
이 규칙은 왜 만들어졌나
2004년 FCC가 이 규정을 도입한 배경은 단순했다. 미디어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 당시 미국은 지상파 TV가 여전히 정보 유통의 중심축이었고, 한 기업이 전국 시청자의 절반 가까이를 지배한다면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우려가 컸다.
규칙의 작동 방식은 명확했다. 어떤 방송 그룹도 미국 전체 TV 시청 가구의 39%를 초과하는 지역에 방송국을 소유할 수 없다. 싱클레어 브로드캐스트 그룹, 넥스타 미디어 같은 대형 지역 방송 그룹들이 이 상한선에 묶여 있었다.
탈규제의 논리, 그리고 그 이면
브렌던 카 의장 측의 논리는 표면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2004년의 미디어 환경은 2025년과 다르다.”넷플릭스, 유튜브, 틱톡이 TV 시청자를 빠르게 잠식하는 시대에 지상파 방송국만 구시대적 규제로 묶어두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상파 TV 광고 시장은 지난 10년 사이 급격히 쪼그라들었고, 많은 지역 방송국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다른 그림을 본다. 탈규제의 수혜자가 누구냐는 질문이다. 싱클레어는 공화당 친화적 논조로 유명한 지역 방송 그룹이다. 규제가 풀리면 이들이 더 많은 지역 방송국을 인수해 전국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탈규제가 순수한 시장 논리인지, 아니면 우호적 미디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치적 계산인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다.
누가 무엇을 얻고, 누가 무엇을 잃나
이해관계자들의 셈법은 엇갈린다.
대형 방송 그룹 입장에서는 기회다. 인수합병의 제약이 사라지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콘텐츠 제작비를 낮추고 광고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생존이 어려운 소형 지역 방송국들에게는 오히려 매각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역 언론인과 시민단체 입장은 다르다. 지역 방송국이 전국 대형 그룹에 흡수될수록 지역 밀착 뉴스는 줄어들고, 본사의 편집 방침이 획일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지역 사회의 정보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우려다.
광고주들은 단기적으로 협상 대상이 줄어드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더 넓은 도달 범위를 가진 단일 파트너와 거래하는 편의성을 선호할 수도 있다.
시청자, 즉 일반 시민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목소리는 가장 작다. 채널 수가 줄어들거나 특정 논조의 방송이 지배적이 될 때 그 영향은 서서히, 그러나 깊게 스며든다.
한국에서 바라보면
이 이야기가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도 방송법상 대기업의 지상파 소유를 제한하고, 특정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을 규제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KBS, MBC, SBS로 이어지는 지상파 구도와 종편 채널들의 경쟁, 그리고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부상이라는 구도는 미국과 묘하게 닮아 있다.
“OTT 시대에 지상파 규제가 무슨 의미냐”는 질문은 한국 미디어 정책 논쟁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미국의 이번 탈규제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는 한국 규제 당국에도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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