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지원이 미국에서는 왜 효과가 없을까
전 세계에서 성공한 현금 지원 정책이 미국에서만 실패하는 이유와 한국 복지정책에 주는 시사점을 분석합니다.
탄자니아에서는 월 20달러의 현금 지원이 생명을 구하지만, 텍사스에서는 월 수백 달러를 줘도 건강 지표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같은 돈, 다른 결과. 이 역설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전 세계를 휩쓴 현금 지원 열풍
지난 10년간 현금 지원 정책은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각국 정부는 현금 지원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고, AI가 일자리를 위협하면서 기본소득 논의도 본격화됐다. 미국에서만 수십 개 도시가 현금 지원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현금 지원이 미국에서는 미미한 건강 개선 효과만 보였다. 37개국의 현금 지원 프로그램을 연구한 결과, 성공하는 곳과 실패하는 곳 사이에는 명확한 패턴이 있었다.
현금 지원이 성공하는 네 가지 조건
첫째, 규모가 일상을 바꿀 만큼 커야 한다. 저소득 국가에서 월 20달러는 가계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돈으로 아이들이 백신을 맞고, 산모가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 몇 개월간 월 수백 달러를 받는 것은 높은 주거비와 의료비 앞에서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둘째, 건강을 가로막는 구체적 장벽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HIV, 결핵, 말라리아, 영양실조 등 빈곤과 직결된 질병이 주요 사망 원인이다. 조금의 현금만 있어도 교통비를 내고 병원에 가거나 영양가 있는 음식을 살 수 있다. 미국의 주요 건강 문제인 만성질환은 주거환경,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불평등, 장기간 축적된 위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단기적 현금 지원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셋째, 규모가 충분해야 한다. 성공한 현금 지원 프로그램은 인구의 상당 부분에게 혜택을 준다. 수백만 명이 지원받을 때 개별 가정을 넘어 사회 전체에 긍정적 효과가 퍼진다. 미국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수백 명에서 수천 명 수준으로 너무 작다.
넷째, 기존 사회 인프라와 연결되어야 한다.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은 광범위한 1차 의료시스템과 연계되어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평가받는다. 미국의 현금 지원 연구들은 대부분 다른 프로그램과 단절되어 있다.
SNAP이 보여주는 성공 공식
미국에서 이 네 조건에 가장 가까운 프로그램은 SNAP(푸드스탬프)이다. 4천만 명 이상이 혜택을 받는 SNAP은 충분히 큰 규모의 지원으로 빈곤을 의미 있게 줄인다. 식품 보안이라는 건강과 직결된 장벽을 겨냥하고, 메디케이드와 학교 급식 등 다른 공공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다.
SNAP이 미국의 유일한 소득 지원 프로그램 중 생존율 개선과 확실한 연관성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공황과 팬데믹 기간 SNAP 혜택을 확대했을 때 프로그램 효과가 훨씬 커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SNAP 예산을 삭감하고 자격 요건을 강화하려 한다. 사기와 남용을 이유로 드는데, 정부 자체 추산으로도 이는 전체 지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 복지정책에 주는 교훈
한국도 코로나19 기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미국 사례는 단순히 현금만 주면 된다는 생각이 위험함을 보여준다.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아동수당 같은 프로그램들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지원 규모와 대상, 다른 복지 시스템과의 연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 구조 하에서는 현금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플린트시의 Rx Kids 프로그램처럼 임신과 영유아기라는 특정 시기에 집중하거나, 의료시스템과 연계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미시간주가 이 프로그램을 주 전체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지역 단위에서 시작해 성과를 입증한 후 확산하는 경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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