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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도 막지 못한 저항의 목소리, 펠라 쿠티가 그래미에서 받은 첫 아프리카인 평생공로상
정치AI 분석

죽음으로도 막지 못한 저항의 목소리, 펠라 쿠티가 그래미에서 받은 첫 아프리카인 평생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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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비트의 아버지 펠라 쿠티가 사후 29년 만에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반체제 음악가가 체제의 인정을 받는 역설적 순간의 의미를 살펴본다.

1997년 세상을 떠난 나이지리아 음악가가 2026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아프로비트의 창시자 펠라 쿠티가 아프리카인 최초로 이 상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영예로운 순간에는 씁쓸함도 묻어있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했던 그가, 죽음 이후에야 인정받게 된 것이다.

반체제 음악가가 받은 체제의 인정

펠라 쿠티의 딸 예니 쿠티는 "아버지는 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음악을 사랑해서 음악을 했고, 동료 예술가들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다. 펠라는 철저한 반체제 인물이었다. 1970년대부터 그의 음악은 나이지리아의 군부독재, 부패, 사회적 불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도구였다. 라고스에 세운 자신의 거주지 칼라쿠타 공화국을 나이지리아로부터 독립 선언하고, 1977년 발표한 앨범 'Zombie'에서는 군인들을 자유의지 없는 좀비로 묘사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군대가 칼라쿠타를 습격해 주민들을 폭행했고, 이 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그의 어머니가 사망했다. 국제앰네스티가 그를 양심수로 인정할 정도로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인물이, 이제 서구 음악계의 최고 권위인 그래미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아프로비트에서 아프로비츠까지

펠라 쿠티의 음악적 유산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창조한 아프로비트 장르는 하이라이프와 요루바 전통음악에 미국의 재즈, 펑크, 소울을 융합한 혁신적 시도였다. 이는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아프로비츠의 토대가 되었다.

그래미 측은 "펠라의 영향력은 세대를 넘나들며, 비욘세, 폴 매카트니, 톰 요크 같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고 현대 나이지리아 아프로비츠를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위즈키드, 버나보이, 다비도 등 현재 글로벌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아티스트들의 뿌리에는 펠라가 있다.

하지만 그의 26장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아티스트 레미 가리오크우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대부분의 아프로비츠 뮤지션들이 펠라의 음악과 패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그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인 범아프리카주의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늦은 인정이 던지는 질문들

이번 수상에 대해 펠라의 사촌 예미시 랜섬-쿠티는 "그가 살아있다면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영예를 주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수상은 여러 질문을 던진다. 왜 아프리카인 최초의 그래미 평생공로상 수상자가 2026년에서야 나왔을까? 아프리카 음악계에는 펠라 외에도 인정받을 만한 아티스트들이 없었을까?

가리오크우는 "우리 아프리카인들이 무엇을 하든 5배 더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는 글로벌 음악계에서 아프리카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본 콘텐츠는 AI가 원문 기사를 기반으로 요약 및 분석한 것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원문 확인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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