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코 사건이 던진 질문, 우리는 정말 남성을 알고 있을까
지젤 펠리코 사건을 통해 본 성범죄자의 일상성과 피해자 비난 문화. 선량한 남편의 가면 뒤 숨겨진 진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50년 동안 완벽한 남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실제로는 자신을 수십 명의 남성들에게 성폭행당하게 한 가해자였다면? 지젤 펠리코의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량한 남성'에 대한 모든 가정을 뒤흔든다.
2024년 프랑스를 충격에 빠뜨린 펠리코 사건의 피해자 지젤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 『삶에 대한 찬가』는 단순한 범죄 고발서를 넘어선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평범한 남성'이라는 가면 뒤 숨겨진 진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괴물성
도미니크 펠리코는 73세의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아내와 5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이어온 '모범적인' 남편이었고, 세 자녀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경찰이 그의 디지털 기기에서 발견한 것은 2만 장 이상의 성폭행 영상과 사진이었다.
문제는 도미니크가 특별히 괴물 같은 외모나 성격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임상심리학자 베로니크 발리에르는 저서에서 "성범죄자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도미니크와 함께 재판을 받은 51명의 남성들도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만난 곳은 '그녀가 모르게(À Son Insu)'라는 온라인 채팅방이었다. 여기서 이들은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하는 것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고 실행에 옮겼다. 최근 발견된 유사한 텔레그램 채널에는 7만 명 이상이 가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이것이 개별적 일탈이 아님을 보여준다.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
지젤의 이야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 중 하나는 그녀가 10년 가까이 원인불명의 건강 악화를 겪으면서도 남편을 의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억 상실, 부인과 질환, 정신적 혼란 등 모든 증상이 남편이 몰래 투여한 수면제 때문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지젤이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시선이다. 재판 과정에서 일부 변호사들은 그녀가 '너무 침착하다'며 비판했고, 반대로 딸 캐롤라인은 분노를 드러낸다고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철학자 마농 가르시아는 이를 두고 "어떤 행동을 하든 누군가에게는 '나쁜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들이 '완벽한 피해자'가 되기를 요구받는 현실과 겹쳐진다. 저항하지 않았다면 '진짜 성폭행이 아니다', 저항했다면 '왜 그렇게 했느냐'는 식의 이중잣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위험
펠리코 사건이 2024년에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기술의 발달이 이런 범죄를 더욱 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의 스마트 글래스는 몰래 촬영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AI 기술은 동의 없는 성적 이미지 생성을 일상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몰카, 딥페이크 포르노, 텔레그램 성착취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성범죄의 문턱을 낮추고, 가해자들에게는 익명성과 공동체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변화하는 세대의 시선
흥미로운 점은 세대 간 반응의 차이다. 지젤이 여전히 '사랑'을 해답으로 제시하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반면, 딸 캐롤라인은 아버지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다. 이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가정 내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를 보여준다.
최근 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연애 거부', '결혼 거부' 현상이 나타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관계에서 여성이 감수해야 했던 위험과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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