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세계가 미국 없는 경제를 준비한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각국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디커플링'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다가온다.
75달러. 파이낸셜타임스가 프리미엄 구독료로 책정한 월 요금이다. 하지만 정작 이 글의 핵심은 구독료가 아니라 제목에 있다. '트럼프의 미국으로부터 디커플링'. 세계 최고 경제지가 이런 제목을 달았다는 것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국이 준비하는 '플랜 B'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일주일 앞둔 지금,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반감이 아니라 경제적 생존전략이다.
유럽연합은 이미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기업들은 미국 시장 진출보다 아시아 시장 확대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일본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확대를 통해 미국 없는 자유무역 체제 구축에 나섰다.
가장 주목할 점은 이런 움직임이 트럼프 당선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2016년 첫 번째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경험이 각국에게는 경고였다.
한국 기업들의 딜레마
한국에게 이 상황은 복잡하다. 미국은 우리의 2위 교역국이자 핵심 안보 파트너다. 하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주력 기업들은 이미 미국의 반도체 규제로 중국 사업에 제약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혜택을 받기 위해 조지아주에 55억달러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미국은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은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
새로운 경제 블록의 등장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역설적으로 미국 없는 경제 블록 형성을 가속화하고 있다. BRICS 확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활성화, 유럽-아시아 간 직접 교역 증가가 그 증거다.
특히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들은 동남아시아와 중동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을 밀어내고 있다. 유럽의 SAP, ASML 같은 기업들도 아시아 시장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기회인가, 위기인가
이런 변화가 한국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중간재 수출은 이런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위험도 크다.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한국의 선택 폭은 줄어든다. 네이버가 라인 매각 압박을 받은 것처럼, 한국 기업들도 '편 가르기'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디커플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공급망 재편,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 기술 표준 변경 등에는 수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혼란은 고스란히 기업과 소비자가 떠안아야 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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