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마음이 세금 폭탄으로? 크라우드펀딩 기부의 딜레마
의료비나 재해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기부가 세금 신고 의무로 이어지는 미국 사례. 한국도 디지털 기부 증가로 비슷한 문제 직면할 수 있어
화재로 집을 잃은 가족을 위해 GoFundMe에서 모금한 돈이 '소득'으로 분류되어 세금을 내야 한다면?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디지털 상호부조가 세법의 사각지대에 빠지면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선의가 만든 세금 함정
인디애나대학교 릴리 패밀리 자선학교의 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의료비나 재해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받은 돈이 '소득'으로 잘못 분류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600달러 기준이다. 2021년 의회가 긱 이코노미의 세무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규정에 따라, Venmo, CashApp, PayPal 등의 플랫폼은 연간 600달러 이상을 받은 모든 사용자에게 세금 신고서(1099-K)를 발송해야 했다. 이전 기준은 2만 달러 이상이었다.
문제는 이 규정이 우버 운전이나 반려동물 돌봄 같은 '일'로 번 돈과 응급상황에서 받은 '기부금'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편의 뇌졸중 치료비를 위해 받은 여러 건의 50달러 기부가 우버 운전으로 번 돈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셈이다.
팬데믹이 키운 상호부조의 역설
코로나19는 상호부조 문화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팬데믹 초기 미국 전역에 약 50개에 불과했던 상호부조 그룹은 2020년 5월까지 80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정부 지원이 늦거나 부족할 때, 사람들은 직접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릴리 패밀리 자선학교 여성자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첫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공식 자선단체보다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나 송금 앱을 통해 개인에게 직접 기부했다. 이런 변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러나 세법은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거래를, P2P 송금 앱들은 수천억 달러의 거래를 처리하지만, 여전히 사업 소득을 탐지하기 위해 설계된 낡은 신고 규칙이 적용되고 있다.
뒤늦은 수정, 여전한 혼란
다행히 2025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세제개혁법에 따라 1099-K 발급 기준이 다시 2만 달러로 상향 조정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버몬트, 버지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여전히 낮은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정말 큰 위기 상황에서는 모금액이 2만 달러를 넘을 수 있다.
실제로 GoFundMe에서는 매년 약 25만 건의 의료비 관련 캠페인이 만들어지며, 암 관련 모금의 평균 목표액은 2만 달러에 달한다. 2025년 LA 산불 이후에는 개인 모금의 중간값이 2만5천 달러를 넘었고, 일부는 수십만 달러를 모으기도 했다.
가장 취약한 이들이 더 큰 타격
연구에 따르면 상호부조는 주로 저소득층, 미등록 이민자 가족, 장애인, 유색인종 공동체를 지원한다. 문제는 이들이 금융 플랫폼과 세무당국의 감시를 더 많이 받으면서도, 세무나 법률 지원에 접근하기는 더 어렵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단순히 세금 신고서를 받는 것만으로도 정부 혜택 수급 자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국이 소득이 너무 높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문제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도 토스, 카카오페이 같은 간편송금 서비스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고, 각종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한 기부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증여세 비과세 한도는 연간 200만원(직계존비속 간 3천만원)이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소액 다수 기부의 경우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재해나 의료비 지원을 위한 온라인 모금이 늘어나면서, 미국과 비슷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선의로 시작된 도움이 세금 문제로 이어진다면, 결국 상호부조 문화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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