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가 69만 개 링크를 한 번에 삭제한 이유
위키백과 편집자들이 Archive.today 사이트 링크 69만5천 개를 전면 차단하기로 결정. DDoS 공격과 콘텐츠 조작 의혹이 배경
69만5천 개. 위키백과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진 링크의 수다. 세계 최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백과 편집자들이 웹 아카이브 서비스 Archive.today에 대한 전면 차단을 결정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독자들을 DDoS 공격에 이용하는 사이트로 안내할 수 없다."
페이월 우회의 숨은 조력자
Archive.today(archive.is, archive.ph 등 여러 도메인 운영)는 그동안 위키백과 편집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다. 유료 구독이 필요한 뉴스 사이트의 기사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주는 '페이월 우회' 서비스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위키백과 편집자들은 이 서비스를 주로 인용 출처로 활용했다. 일반 독자가 접근할 수 없는 유료 콘텐츠라도 Archive.today에 저장된 버전을 링크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69만5천 번 이상 인용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DDoS 공격의 '무료 노동자'
하지만 올해 1월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블로거 야니 파토칼리오(Jani Patokallio)가 자신의 웹사이트에 비정상적인 트래픽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조사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Archive.today의 캡차(CAPTCHA) 페이지를 방문하는 사용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파토칼리오의 블로그에 검색 요청을 보내는 자바스크립트 코드를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수십만 명의 위키백과 독자들이 DDoS 공격의 '무료 노동자'로 이용당한 셈이다.
파토칼리오는 이것이 자신의 관심을 끌고 호스팅 비용을 증가시키려는 의도적 행위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는 2023년 Archive.today의 정체를 파헤친 블로그 포스트를 게시한 바 있다.
러시아발 '재능 있는 개인'의 작품?
파토칼리오의 조사에 따르면 Archive.today의 소유주는 "불투명한 미스터리"다. 하지만 그는 이 사이트가 "상당한 재능과 유럽 접근권을 가진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1인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
흥미롭게도 Archive.today 운영자는 파토칼리오에게 해당 포스트를 2-3개월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언론들이 당신 블로그에서 몇 단어만 따와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이유였다.
파토칼리오가 거절하자 운영자는 "점점 더 정신나간 협박"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Archive.today에 저장된 웹페이지들이 조작되어 파토칼리오의 이름이 삽입된 흔적이 발견된 점이다.
위키백과의 딜레마: 신뢰성 vs 접근성
위키백과 편집자들은 현재 모든 Archive.today 링크를 원본 소스나 웨이백 머신 같은 다른 아카이브 서비스로 교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딜레마가 드러난다.
Archive.today 운영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위키백과에 대한 가치는 페이월 우회가 아니라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많은 뉴스 사이트들이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경우, 원본 링크는 무용지물이 된다.
국내 언론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사 삭제나 수정이 빈번한 환경에서 아카이브 서비스는 정보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서비스 자체가 신뢰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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