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바람을 사는 이유
TSMC가 캐나다 노스랜드파워와 30년 장기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했다. 1기가와트 규모의 대만 해상풍력 전력을 전량 구매하는 이 계약은 AI 반도체 호황 뒤에 숨겨진 에너지 위기를 드러낸다.
AI 반도체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할까. TSMC는 그 질문에 숫자로 답했다. 30년, 1기가와트, 100%.
반도체 공장이 바람을 사다
TSMC는 지난 4월 30일 캐나다 전력기업 노스랜드파워(Northland Power)와 '하이롱(Hai Long)'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전력을 30년간 100% 구매하는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규모는 1기가와트(GW) 이상으로, 대만 서해안 타이완 해협에 위치한 세 곳의 해상 풍력단지에서 생산되는 전력 전량을 TSMC가 가져간다.
하이롱 프로젝트는 이미 2025년부터 대만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2027년까지 완전 가동될 예정이다. 완공 시 대만 가정 기준 100만 가구 이상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다.
'기록적 이익'의 이면
TSMC는 AI 붐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엔비디아, 애플, AMD의 핵심 칩을 위탁 생산하며 분기마다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왜 30년짜리 바람 계약을 맺었을까.
답은 전력 소비량에 있다. AI 칩 제조는 극도로 에너지 집약적이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초정밀 장비들은 24시간 가동되며, 클린룸 환경 유지만으로도 막대한 전력이 소모된다. TSMC의 전력 수요는 대만 전체 전력 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AI 수요가 늘수록 이 비중은 더 커진다.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압력도 작용한다. 주요 고객사인 애플, 엔비디아, AMD 등은 협력업체에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기후 공시 규제가 강화되는 유럽·미국 시장에서 '탄소 발자국'은 이제 거래 조건이 됐다.
대만의 에너지 딜레마
이 계약을 단순히 한 기업의 ESG 행보로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 대만은 구조적인 에너지 위기 한가운데 있다.
대만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천연가스와 석탄이 전력 생산의 주축이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전력망을 외부와 연결할 수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전력 수요는 AI 산업 성장과 함께 급증했다. 전력 부족은 반도체 공장 가동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타이완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바람이 강한 해역 중 하나로 꼽힌다. 해상풍력은 대만이 자체적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현실적 선택지다. TSMC가 30년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이 선택을 투자 리스크가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본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유사한 압박 아래 있다. 두 기업 모두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 목표를 선언했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인프라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 역시 해상풍력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어업권 갈등, 인허가 지연 등으로 속도가 더디다. TSMC의 이번 계약은 반도체 기업이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직접 해결'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국내 기업들에 실질적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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