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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은 17세, 등 뒤에서 총알에 맞아 죽었다
정치AI 분석

교복 입은 17세, 등 뒤에서 총알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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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Z세대 시위에서 경찰이 비무장 학생들에게 실탄 발포. BBC 조사로 드러난 충격적 진실과 민주주의의 그림자

30,000명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이 원한 건 단 하나, 부패한 기성세대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끝날 무렵, 19명이 죽어있었다. 그 중 가장 어린 희생자는 17세 학생이었다.

지난해 9월 8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벌어진 이 참극의 전모가 BBC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경찰 내부 문서와 4,000개 이상의 영상 분석 결과, 당시 경찰청장이 직접 "필요한 무력 사용" 명령을 내렸다는 충격적 사실이 확인됐다.

디스코드로 시작된 혁명

슈리얌 촐라가인은 그날 아침 어머니에게 말했다. "Z세대 청년들이 모이는 거예요. 교복을 입고 갈 거고, 평화로운 시위가 될 거예요."

어머니는 만류했지만, 17세 소년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부패가 네팔을 속까지 썩게 만들었다"며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아버지는 회상한다.

네팔의 Z세대는 오랫동안 분노를 키워왔다. 2008년 공화국이 된 이후 새로운 헌법이 약속한 희망은 여전히 공허했다. 청년 5명 중 1명은 일자리가 없었고, 정치는 여전히 기득권 세력의 전유물이었다.

8월부터 이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네포 베이비"라는 용어를 퍼뜨리며 특권층 자녀들을 비판했다. 정부가 9월 4일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X 등을 차단하자, 이들은 게임 플랫폼 디스코드로 옮겨가 시위를 조직했다.

12시 40분, 죽음의 명령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시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경찰이 예상한 3,000명의 10배인 30,000명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참여한다"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당국의 판단 착오였다.

오후 12시 30분,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시위대 일부가 국회 담장을 넘나들고 경비초소에 불을 지르자, 현장 경찰들은 지휘부에 실탄 사용 허가를 요청했다.

BBC가 입수한 경찰 내부 문서에 따르면, 오후 12시 40분 "피터 1"이라는 호출부호를 사용하는 인물이 "통행금지 이미 발효. 추가 허가 불필요. 필요한 무력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피터 1"은 당시 경찰청장 찬드라 쿠버 카풍의 호출부호였다. 카풍은 이후 대법원에 책임을 부인하는 서면을 제출했지만, 여러 경찰 관계자들이 BBC에 그의 명령이었다고 증언했다.

뒷걸음치다 총에 맞은 아이

오후 2시 9분, 슈리얌은 시위 최전선에서 조용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녹색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 "부패 반대 청년들"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던 그는 다른 시위대원들이 돌을 던지는 것과 거리를 두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때 총알이 그의 뒤통수를 관통했다. 비무장 상태로 현장을 떠나려던 17세 소년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BBC 분석에 따르면, 통행금지 이후 확인된 6건의 총격 사건에서 희생자들 중 누구도 폭력에 가담하고 있지 않았다. 오후 2시 21분 국회 내부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7발을 발사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민주주의의 역설

이 사건은 젊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근본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10년간 17,000명이 목숨을 잃은 내전을 끝내고 2008년 공화국이 된 네팔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국가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한 익명의 경찰관은 "우리는 그들을 적처럼 쏘았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디스코드를 통한 이들의 동원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새로운 세대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9월 9일, 전날의 유혈 진압에 분노한 네팔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번에는 모든 연령대가 참여했고, 경찰서가 불타고 경찰관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총리가 사임하고 정부가 붕괴됐다.

본 콘텐츠는 AI가 원문 기사를 기반으로 요약 및 분석한 것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원문 확인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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