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H-1B 비자, '아메리칸 드림'에서 '아메리칸 딜레마'로
트럼프 정부의 H-1B 비자 규제 강화로 기업들이 채용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10만 달러 수수료와 까다로운 심사로 인한 변화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10만 달러. 한 명의 외국인 인재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새로운 비용이다. 한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H-1B 비자가 이제는 기업들에게 딜레마가 되고 있다.
달라진 게임의 규칙
H-1B 비자는 매년 8만5천개의 자리에 40만개 이상의 지원이 몰리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하지만 2026년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작년 9월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일련의 변화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10만 달러라는 거액의 수수료다. 해외에서 새로운 인재를 채용하려는 기업들은 이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23년간 H-1B 비자 업무를 담당해온 푸르비 초타니 변호사는 "고객들이 비용-편익 분석을 하며 고민에 빠져있다"고 전했다.
심사 과정도 까다로워졌다. 소셜미디어 검열, 건강상태 심사까지 포함된다. 초타니 변호사는 "지원자가 비만이거나 천식이 있으면 비자 담당관이 거부할 수 있다"며 "미국 의료 자원을 사용할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새로운 계산법
변화는 이미 기업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 평소라면 이맘때쯤 고객사들로부터 지원자 명단을 받았을 초타니 변호사는 "이번에는 아무도 숫자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두 가지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 내 인재 채용에 집중하는 것이다. F-1 비자(학생 비자)로 체류 중인 외국인 졸업생이나 이미 H-1B로 일하고 있는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10만 달러 수수료를 피할 수 있다.
두 번째는 O-1 비자나 L-1 비자 같은 다른 비자 카테고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타니 변호사는 "사각 못을 둥근 구멍에 억지로 끼워 넣는 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H-1B를 남용한 결과가 지금 우리를 물어뜯고 있는 것처럼, 다른 비자를 남용하면 당국이 그것도 단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기업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이 변화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미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도 현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반도체, AI, 배터리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인재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비자 규제 강화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이는 한국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국 진출이 어려워진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을 대안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K-비자 정책이나 디지털노마드 비자 같은 제도들이 더욱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여전한 아메리칸 드림의 매력
그럼에도 미국의 매력은 여전하다. H-1B 지원자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인도인들의 관심도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초타니 변호사는 "한 명이 포기하면 아홉 명이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퍼뜨리는 잘못된 정보도 문제가 되고 있다. "O-1 비자나 EB-1A 비자를 받았다"며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원자들의 판단을 흐리고, 결국 시스템 전체의 신뢰성을 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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