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석유 412만 배럴, 세계는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IEA가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32개국이 4억1200만 배럴을 시장에 푼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다. 그로부터 2주 뒤, 세계 원유 공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다. 배럴당 70달러였던 국제 유가는 245달러까지 치솟았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최대 폭등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비상 방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즉각 움직였다. 32개국이 공동으로 4억12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4개월에 걸쳐 시장에 방출하기로 했다. 2026년 3월 말부터 시작되는 이번 방출은 IEA 설립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이 단독으로 1억7200만 배럴을 내놓는다. 전체 방출량의 거의 절반이다.
전략비축유라는 개념은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다. 미 해군이 석탄 대신 석유를 연료로 채택한 1912년, 미 의회는 캘리포니아의 엘크힐스, 와이오밍의 티팟돔 같은 유전 지대를 전략적으로 확보해뒀다. 오늘날의 시스템은 그보다 정교하다. 이미 생산된 원유를 텍사스·루이지애나 해안의 대형 암염 돔 지하에 저장해두고, 유사시 즉각 시장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의 전략비축유 최대 용량은 7억1350만 배럴이지만, 2026년 3월 기준 실제 보유량은 4억1500만 배럴로 용량의 약 60%에 불과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바이든 행정부가 1억8000만 배럴을 방출했고, 이후 재충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방출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이번 방출로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은 하루 300만~400만 배럴 수준이다. 문제는 호르무즈 봉쇄로 막힌 물량이 하루 1000만 배럴 이상이라는 점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비축유 방출만으로는 공급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방출을 결정했을까. 워싱턴대학교 국제학 강사 스콧 몽고메리의 분석에 따르면, 전략비축유 방출의 진짜 효과는 물리적 공급량 보충이 아니라 가격 기대 심리 안정에 있다. 국제 유가는 현물이 아닌 선물(先物) 계약으로 결정된다. 향후 1~3개월 사이 추가 공급이 예정돼 있다는 신호만으로도 거래자들이 계약 가격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2022년 미 재무부 분석에서도 당시 방출이 갤런당 30~40센트 수준의 가격 인하 효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규모는 2022년과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는 러시아산 원유가 일부 우회로를 통해 계속 공급됐다. 지금은 중동 핵심 수송로가 통째로 막혔다. 카타르 가스 터미널 공격 등 추가 시설 피해까지 더해지면서, IEA가 조만간 2차 방출을 요청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 얼마나 버틸 수 있나
한국은 이 상황에서 특히 취약하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100%에 달하고, 중동산 원유 비중이 전체의 70% 안팎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에너지 공급망의 심장부나 다름없다.
한국의 전략비축유는 약 9700만 배럴 수준으로, 정부 비축분과 민간 비축분을 합산하면 약 106일치 수입량에 해당한다. IEA 기준인 90일을 상회하지만, 일본의 200일 이상과 비교하면 여유가 크지 않다.
유가 급등은 이미 국내 경제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유·화학 업종은 원료비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기아 등 수출 제조업체들은 물류비 상승과 글로벌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해 있다. 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를 잇따라 올리고 있고, 소비자들은 주유소에서 이미 그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에너지 관련주와 방산주가 강세를 보이는 반면, 항공·해운·화학 업종은 하락 압력을 받는 양극화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
비축유 방출 이후가 더 문제
이번 방출이 끝나면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2억4300만 배럴로 줄어든다. 용량 대비 34% 수준으로, 1980년대 초 이후 최저치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2026년 하반기 중 2억 배럴 재충전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전쟁 이전 수준 회복에 불과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자국 전략비축유를 14억 배럴로 늘렸다. 원유 소비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중국이 이처럼 막대한 비축량을 쌓아온 것은, 에너지 안보를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지정학적 생존 문제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비축량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동안, 중국은 조용히 세계 최대의 전략비축유 보유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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