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태블릿으로 시작됐다고?
2007년 세상을 바꾼 아이폰의 탄생 비화. 사실 애플이 처음 만들려던 건 태블릿이었다. 실패와 우연이 만든 혁신의 진짜 이야기.
2007년 1월 9일.스티브 잡스가 무대에서 아이폰을 꺼내든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완벽해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 모습으로 태어날 운명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뒤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실패작들, 막판 설계 변경, 그리고 몇 번의 행운.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애플이 처음 만들려던 제품은 전화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건 태블릿에서 시작됐다
1999년, 영국 출신 디자이너 던컨 커가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2003년 초부터 그는 매주 화요일마다 특별한 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하나였다. '마우스 클릭' 말고 컴퓨터와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
그때 커의 눈에 들어온 게 핑거웍스라는 델라웨어 회사의 제품이었다. 6.25 x 5인치 크기의 검은 터치패드. 피아노 연주자였던 웨인 웨스터만이 손목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발명한 거였다.
2003년 말, 애플은 더 큰 버전을 주문했다. 12 x 9.5인치. 컴퓨터 화면 크기에 가까웠다. 커의 팀은 실험실에서 LCD 프로젝터를 삼각대에 올리고, 터치패드 위에 하얀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화면 속 아이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 같았다. 두 손가락을 벌리면 지도가 확대되고, 탭하면 메뉴가 열렸다. 2003년 11월, 아이브가 잡스에게 이 데모를 보여줬다. 모두가 확신했다. '이게 미래다.'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의 저녁 만찬
2005년 말, 잡스는 아내 로렌의 친구 남편인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의 50번째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저녁 식사 중, 그 엔지니어는 잡스에게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타일러스 펜을 쓰는 태블릿으로 '컴퓨팅의 미래'를 해결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완전히 잘못 접근하고 있었어요." 잡스는 나중에 말했다. "그 저녁이 10번째로 같은 얘기를 듣는 자리였거든요. 너무 지겨워서 집에 와서 말했죠. '젠장, 진짜 태블릿이 뭔지 보여주자.'"
월요일 아침 경영진 회의에서 잡스가 선언했다. "진짜 태블릿을 만들어서 세상에 보여주자." 스타일러스는 없다. "신이 우리에게 10개의 스타일러스를 주셨다"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태블릿의 한계, 그리고 전화기라는 아이디어
핑거웍스의 멀티터치 기술이 갑자기 유용해 보였다. 아이브의 팀은 아이북 노트북 부품을 써서 Mac OS X가 돌아가는 멀티터치 태블릿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2005년 당시 페이지 크기 터치스크린은 빠른 프로세서가 필요했고, 그건 큰 배터리를 의미했다. 프로토타입은 너무 무겁고 두꺼웠다. 더 큰 문제는 맥 OS가 손가락 터치에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데 잡스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른 아이디어가 자라고 있었다. 2005년이면 휴대폰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조잡하고 제한적이었지만, 신호는 분명했다. 아무도 두 개의 기기를 들고 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이팟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모토로라와의 실패작 'ROKR'
애플은 휴대폰 경험이 전무했다. 엔지니어도, 디자이너도, 통신업계 인맥도 없었다. 그래서 이사회 권유로 모토로라와 손을 잡았다. 모토로라의 얇고 반짝이는 RAZR 폴더폰은 대박 상품이었으니까.
계획은 간단했다. 모토로라가 이미 디자인한 폰에 아이팟 소프트웨어를 넣는 것.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음악을 살 수 있는 첫 번째 폰이 될 거였다.
2005년 9월, 잡스가 ROKR E1을 공개했을 때 그의 혐오감이 역력했다. "꽤 멋진 폰입니다"라고 말했지만 박수는 없었다. 메모리 카드에 공간이 남아도 100곡밖에 저장할 수 없었고, 노래 전송은 끔찍하게 느렸다.
"사람들이 계속 '애플 폰' 또는 '아이튠스 폰'이라고 부르는 게 좌절스러웠어요." 현재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인 그렉 조스위악이 회상한다. "믿어주세요. 우리는 이 폰과 아무 관련이 없었어요."
아이팟에 전화 기능을 넣는다면?
아이팟에 전화 기능을 추가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잡스는 아이팟 사업을 맡고 있던 토니 파델에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파델의 팀은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하나는 풀스크린 비디오 아이팟이었다. "아이패드 이전의 작은 아이패드 같은 거였죠." 파델이 말한다. 가상 클릭휠이 화면에 나타났다가 비디오 재생 때는 사라지는 방식이었다.
또 다른 프로토타입은 일반 아이팟에 통신 기능을 넣은 거였다.
두 경우 모두 문제는 휠이었다. 전화번호 목록을 스크롤하기엔 환상적이었지만, 문자를 입력하기엔 악몽이었다. 한 글자씩 스크롤해야 했으니까. "몇 주고 몇 주고 몇 주고 시도했지만 절대 안 됐어요." 파델이 말한다.
그때 누군가 기억해냈다. 몇 년 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든 멀티터치 실험을. 그 기술을 축소해서 폰 인터페이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전면이 모두 터치스크린인 폰. 작은 키보드도 없이!
"태블릿 프로젝트는 보류하자." 잡스가 말했다. "폰을 만들어보자."
관성 스크롤링의 마법
이때쯤 커, 바스 오딩, 임란 차우드리로 구성된 멀티터치 그룹은 더 이상 프로젝터가 필요 없었다. 12인치 멀티터치 아이북 화면을 독립형 하드웨어로 개발했다. 폰 화면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 이미지의 '활성' 영역을 폰 크기 직사각형으로 제한했다.
1998년부터 애플에서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로 일한 오딩은 멋진 애니메이션 전문가였다. 그는 매크로미디어 디렉터에서 200개 이름이 들어간 연락처 앱 데모를 만들었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목록이 스크롤되고, 이름을 탭하면 '카드'가 열리고, 전화번호를 탭하면 가짜 다이얼 화면이 나타났다.
최고의 부분은 관성 스크롤링이었다. 웹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튕기면 자체 모멘텀으로 계속 스크롤됐다. 더 빨리 튕기면 더 빨리 스크롤되고, 튕기기를 멈추면 물리 법칙을 따르듯 천천히 멈췄다.
페이지 끝에 도달하면 갑자기 멈추는 대신 실제로 '바운스'했다. 마치 고무줄에 부딪힌 것처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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