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된 코드가 오늘도 당신의 월급을 처리한다
코볼(COBOL)은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가. 미국 실업급여부터 금융 시스템까지, 하루 3조 달러를 처리하는 60년 된 언어의 실체와 AI 전환의 한계를 분석한다.
오늘 당신의 월급이 통장에 찍혔다면, 그 거래의 일부는 1960년대에 설계된 언어로 처리됐을 가능성이 높다.
COBOL. '공통 업무 지향 언어(Common Business-Oriented Language)'의 약자다. 2000년까지 작성된 전 세계 코드의 80%가 이 언어로 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 3조 달러 규모의 금융 거래를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이것을 어떻게 없애야 할지 모른다.
팬데믹이 드러낸 60년 된 시한폭탄
2020년 코로나19 초기, 뉴저지 주지사 필 머피는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인 고백을 했다. "COBOL 개발자가 없습니다." 폭증하는 실업급여 신청을 처리하려면 수십 년 된 시스템을 손봐야 했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주 정부에 없었다는 것이다.
뉴저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전역의 수십 개 주가 같은 처지였다. 한 추산에 따르면 COBOL 시스템의 비효율성이 2020년 미국 GDP에서 1,050억 달러의 손실을 야기했다. 그 후 뉴저지는 실업급여 시스템을 새로 구축했다. 사용자 경험은 개선됐다. 하지만 백엔드는 여전히 메인프레임 위에서 COBOL로 돌아가고 있다.
이 언어가 탄생한 건 1959년이다. 그레이스 호퍼를 포함한 미국 컴퓨터 산업 전문가들이 모여 설계했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명확했다. 프로그램이 특정 기계에 종속돼 있어 다른 기계에서 돌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짜야 했다. 비용 낭비가 심했다. COBOL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 독립적으로 설계됐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영어에 가까운' 문법을 채택했다.
국방부가 이 프로젝트를 지원했고, 연방 조달 계약을 따내려는 컴퓨터 제조사들은 앞다퉈 COBOL 컴파일러를 탑재했다. 냉전 시대 국방부 계약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COBOL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읽기 쉬운 언어'라는 약속이 무너진 곳
COBOL의 설계 철학은 야심찼다. Java가 허용하는 예약어가 68개인 반면, COBOL은 수백 개를 허용한다. 'is', 'then', 'to' 같은 일상 단어도 쓸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설계자들은 COBOL이 프로그래머라는 직군 자체를 대체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단일 코드 줄은 읽기 쉬웠다. 수만 줄이 쌓이면 얘기가 달라졌다. 특히 'GO TO'라는 구문이 문제였다. 프로그램의 어느 지점에서든 다른 지점으로 무조건 점프할 수 있는 이 구조는 이른바 '스파게티 코드'를 낳았다.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미로가 됐다.
컴퓨터 과학자 에츠허르 다이크스트라는 독설로 유명하다. 그는 "COBOL을 사용하면 정신이 망가진다. 따라서 그것을 가르치는 행위는 범죄로 간주돼야 한다"고 했다. 반면 원설계자 중 한 명인 진 사메트는 달리 봤다.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쓰는 프로그래머라고. 수학자 프레드 그루엔버거는 이렇게 정리했다. "고수의 손에서 COBOL은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수준 낮은 프로그래머 손에 들어가면 엉망진창이 된다."
설계상의 결함도 있었다. 모듈 간 데이터를 직접 전달하는 '매개변수화' 기능이 빠졌다. 모든 모듈이 데이터를 공유하는 구조였다. 한 곳을 수정하면 전체가 흔들렸다. 수백만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사회보장 수당 지급이 멈추는 사고가 이 구조에서 비롯됐다.
AI가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 IBM 같은 기업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COBOL 변환 도구를 팔고 있다. 이론은 간단하다. AI가 수십 년 된 코드를 읽고 현대 언어로 번역해준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효율부(DOGE)도 한때 이 방식으로 사회보장청의 코드베이스를 몇 달 안에 전면 교체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그 계획은 사실상 멈춰 있다.
문제는 단순 변환이 낳는 결과물이다. COBOL을 Java로 그냥 옮기면 업계에서 'JOBOL'이라고 부르는 혼종이 탄생한다. COBOL의 구조를 Java 문법으로 흉내 낸 것으로, 두 언어의 장점을 모두 잃는다. 원본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표면만 바꾼 결과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있다. 1959년 COBOL도 같은 약속을 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효율적인 언어. 지금의 AI 변환 도구들도 같은 말을 한다. 그 약속이 어떻게 됐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한국 금융·공공 시스템은 안전한가
이 문제가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과 공공기관 역시 수십 년 된 메인프레임 기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은 2010년대부터 차세대 시스템 전환에 수천억 원을 투자해왔지만, 핵심 계정계 시스템의 완전한 탈메인프레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거나 미완으로 남아 있다.
금융감독원과 행정안전부는 디지털 전환을 독려하고 있지만, 레거시 시스템 교체는 단순히 예산과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쌓인 업무 로직이 코드 안에 녹아 있고,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본질적 위험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개발자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국내 일부 금융기관이 COBOL 개발자를 고령 퇴직 전에 붙잡아두려 하거나, 반대로 젊은 개발자에게 COBOL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시장이 이미 이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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