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전파를 지배하는 날, 중국이 먼저 온다
중국이 AI와 전자전을 결합한 'AI 플러스' 전략으로 전자기 스펙트럼 지배권을 노린다. 통신·레이더·재밍이 AI로 재편될 때, 한반도 안보 방정식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레이더가 먼저 보고, 통신이 먼저 끊기고, 재밍이 먼저 시작된다. 미래 전쟁에서 0.1초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수 있다면, 중국은 지금 그 0.1초를 인공지능으로 사들이고 있다.
전파를 장악하는 자가 전쟁을 이긴다
지난달 발표된 산업 전문가들의 논문은 조용하지만 묵직한 주장을 담고 있다. 중국이 AI와 전자전(Electronic Warfare)을 결합한 이른바 'AI 플러스' 전략을 통해 전자기 스펙트럼 지배권이라는 새로운 전장을 선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전자전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적의 레이더를 교란하고, 통신을 끊고, 미사일 유도 신호를 무력화하는 것—이 모든 것이 전파(전자기파)를 통해 이루어진다. 냉전 시대부터 강대국들은 전자기 스펙트럼을 '보이지 않는 전선'으로 여겨왔다. 문제는 이 전선이 AI를 만나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AI를 전파 물리학 자체에 융합시키면, 통신은 더 빠르고 스마트해지며, 재밍은 더 정밀해지고, 적의 어떤 방해도 실시간으로 우회할 수 있는 '자가 치유형 전자전 시스템'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존의 전자전과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왜 지금, 왜 중국인가
타이밍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2030년까지 AI 분야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국가 전략을 공식화했고, 군사 분야에서도 '지능화 전쟁(Intelligentized Warfare)'이라는 개념을 인민해방군(PLA) 교리의 중심에 놓았다. 전자전은 그 교리의 가장 현실적인 적용 영역 중 하나다.
배경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미국과의 재래식 군사력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 어렵다고 판단한 중국은, 비대칭 전력—사이버전, 우주전, 전자전—에 집중 투자해왔다. 전자기 스펙트럼 지배는 항공모함 한 척을 건조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전략적 우위를 만들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AI가 전자전에 가져오는 속도의 변화다. 기존 전자전 시스템은 인간 운용자가 신호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지연이 발생한다. AI 기반 시스템은 이 과정을 밀리초(ms) 단위로 압축한다. 전파 환경이 변하면 즉각 적응하고, 적의 재밍 패턴을 학습해 다음 주기에 이미 우회로를 준비한다.
이해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시선
미국 국방부는 이 흐름을 오래전부터 주시해왔다. DARPA는 AI 기반 스펙트럼 관리 프로그램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미 공군은 전자전 항공기 플랫폼의 AI 통합을 가속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이 분야에서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일부 영역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동맹국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NATO 회원국들은 중국의 전자전 역량 강화가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과 맞물릴 경우 유럽 전선에도 직접적 위협이 된다고 본다. 반면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미국 주도의 전자기 스펙트럼 질서 자체에 의문을 품으며, 중국의 부상을 '패권 재편'의 신호로 읽기도 한다.
한국의 입장은 지정학적으로 예민하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전자전 환경이 가장 복잡한 지역 중 하나다. 북한은 이미 GPS 재밍과 드론 전자전을 실전에 활용해왔으며, 중국의 AI 전자전 역량이 고도화될수록 한미 연합 통신망과 방공 시스템에 대한 위협 시나리오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등 국내 방산 기업들이 전자전 분야 R&D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기술이 열어놓은 미완의 질문들
그러나 논문의 주장이 모두 현실이 된 것은 아니다. AI 전자전 시스템의 실전 배치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실제 전장 환경에서의 성능은 실험실 결과와 다를 수 있다. AI 시스템은 예측하지 못한 신호 환경에서 오작동하거나, 적의 적대적 신호(adversarial signal)에 의해 역으로 교란될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AI가 전자기 스펙트럼을 지배하게 되면, 민간 통신—스마트폰, 항공 관제, 금융 거래—은 어떻게 되는가? 군사용 AI 전자전 시스템과 민간 인프라의 경계는 어디에 그어지는가? 국제법은 아직 이 질문에 답을 갖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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