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에서 강경파로, 이란 최고지도자 사후 권력 중심에 선 라리자니
칸트를 연구한 철학자이자 핵 협상가였던 알리 라리자니가 하메네이 사후 이란의 안보 전략을 이끌며 강경 노선으로 전환했다. 그의 변화가 중동 정세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67세의 알리 라리자니는 지난 수십 년간 이란 정치계의 온건한 얼굴이었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 관한 책을 쓰고, 서방과 핵 협상을 이끈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3월 1일, 그의 목소리는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 사령관 모하마드 팍푸르가 사망한 지 24시간 만에, 라리자니는 국영방송에 출연해 불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과 시온주의 정권이 이란 국민의 심장에 불을 질렀다"며 "우리가 그들의 심장을 태울 것이다. 시온주의 범죄자들과 뻔뻔한 미국인들이 후회하게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란의 '케네디 가문'
라리자니는 1958년 이라크 나자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타임지가 2009년 "이란의 케네디 가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아버지 미르자 하셰메 아몰리는 저명한 종교학자였고, 형제들도 사법부와 전문가회의 같은 핵심 기관을 이끌었다.
20세에 이란 이슬람공화국 창건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측근 모르테자 모타하리의 딸과 결혼하며 혁명 엘리트와 개인적 유대를 맺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딸 파테메는 테헤란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종교적 배경을 가진 많은 동료들과 달리, 라리자니는 세속적 학문 배경도 갖췄다. 1979년 샤리프 공과대학교에서 수학·컴퓨터과학 학사를 취득하고, 테헤란대학교에서 서양철학 석·박사를 받았다. 박사논문 주제는 칸트였다.
온건파에서 강경파로의 변신
라리자니의 정치 경력은 다채롭다. 1979년 혁명 후 1980년대 초 혁명수비대에 입대했고, 이후 정부로 옮겨 1994-1997년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대통령 하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1994-2004년에는 국영방송 사장을 맡았지만, 제한적 정책으로 이란 젊은층이 해외 매체로 눈을 돌리게 했다는 개혁파의 비판을 받았다.
2008-2020년 3연임 국회의장을 지내며 내정과 외교정책 형성에 주요 역할을 했다. 2005년 대선에 보수 후보로 출마했지만 결선에 오르지 못했고, 같은 해 국가최고안보위원회 사무총장과 핵 협상 수석대표로 임명됐다.
하지만 2007년 당시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핵 정책과 거리를 두며 사임했다. 이후 2015년 핵 협정(JCPOA) 체결에서 국회 승인을 이끌어내는 등 온건 노선을 걸었다.
배제와 복귀
2020년 국회의장직을 떠난 라리자니는 2021년과 2024년 대선 출마를 시도했지만 모두 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에서 탈락했다. 2021년 탈락은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를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의도로 분석됐다.
그러나 2025년 8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에 의해 국가최고안보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재임명되며 영향력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복귀 후 그의 입장은 강경해졌다. 2025년 10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 협정을 취소하며 "기구의 보고서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선언했다.
전쟁 중의 외교
현재 위기 직전까지 라리자니는 미국과 간접 협상에 참여했다. 2월 오만 중재로 진행된 회담에서 그는 워싱턴으로부터 구체적 제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고, 이스라엘이 "전쟁을 점화하기 위해" 외교 경로를 방해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협상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긍정적"이라고 표현했고, 미국이 군사적 옵션이 실행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협상에 의존하는 것은 합리적 경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2월 28일 시작된 공습이 외교의 창을 산산조각냈다. 최근 연설에서 라리자니는 헌법에 따라 지도부 승계 계획이 마련돼 있다고 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는 미국이 지도자 제거로 이란을 불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역내 국가들을 공격할 의도는 없지만, 미국이 사용하는 모든 기지를 표적으로 삼을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월요일에는 미국과의 새로운 협상 의사가 있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하며 워싱턴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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