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진짜 이유
EU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하며 대이란 압박을 강화했다. 수천 명 시위대 사망과 트럼프의 군사적 압박이 만든 새로운 중동 위기를 분석한다.
6,301명. 지난 12월과 1월 이란 시위 진압 과정에서 확인된 사망자 수다. 이 숫자가 유럽연합(EU)을 움직였다.
EU는 29일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를 테러단체 목록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 고위대표는 "억압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며 이번 결정을 "결정적 조치"라고 규정했다.
19만 명 정예부대의 추락
이란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직후 창설된 이란 최강의 군사조직이다. 약 19만 명의 현역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육해공군 전력과 함께 이란의 전략무기까지 관할한다.
단순한 군사조직을 넘어 막강한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해외에서는 동맹국 정부와 무장단체에 자금, 무기, 기술, 조언을 제공하는 '그림자 외교관' 역할을 담당했다. 국내에서는 수십만 명의 준군사조직인 바시즈 저항군을 통해 반정부 시위를 진압해왔다.
이번 EU의 테러단체 지정으로 혁명수비대는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수준의 제재 대상이 됐다. 여행 금지, 자산 동결 등의 제재가 가해지며, 지원 네트워크 차단이 목표다.
프랑스가 마음을 바꾼 이유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의 입장 변화다. 프랑스는 그동안 이란과의 외교 관계 단절을 우려해 혁명수비대의 테러단체 지정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주 수요일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이탈리아가 주도한 테러단체 지정 추진에 적극 동참했다.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브뤼셀에서 "이란 현대사상 가장 폭력적인 탄압"이라며 "저질러진 범죄에 면죄부는 없다"고 강조했다. 외교적 실용주의로 유명한 프랑스조차 돌아선 것은 시위 진압의 잔혹성이 국제사회의 용인 한계를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칼라스 고위대표는 "수천 명의 자국민을 살해하는 정권은 스스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이란과의 외교 채널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압박과 이란의 대응
EU의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군사적 압박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는 USS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끄는 "거대한 함대"가 "강력한 힘과 열정, 목적"을 가지고 이란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란에 핵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을 촉구하며 "시간이 다 떨어져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합의에 실패할 경우 작년 미국의 이란 공습보다 "훨씬 더 심한"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자국 군대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린 채" 어떤 침략에도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란 육군 참모총장 아미르 하타미는 미국의 공격에 "분쇄적 대응"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각 군사부대가 1,000대의 드론을 새로 배치받았다고 발표했다.
숫자로 보는 참극의 규모
이란 당국이 부과한 인터넷 차단으로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은 어렵다. 하지만 미국 소재 인권활동가뉴스에이전시(HRANA)는 6,301명 이상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5,925명이 시위대였다.
노르웨이 소재 이란인권단체(IHR)는 최종 사망자가 2만5,000명을 넘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반면 이란 당국은 3,100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대부분이 "폭도들"에 의해 공격당한 보안요원이나 방관자라고 주장했다.
BBC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제 언론사는 이란 내부 취재가 금지된 상황이다. 하지만 보안군이 군중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영상들이 BBC에 의해 검증됐다.
서방의 엇갈린 대응
미국, 캐나다, 호주는 이미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지만, 영국은 아직 유보적 입장이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부총리는 수요일 이란의 "평화 시위대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규탄했지만, "특정 조직의 테러단체 지정 검토 여부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는 것이 오랜 정부 정책"이라고 밝혔다.
이런 온도차는 각국이 이란과 맺고 있는 경제적, 외교적 관계의 차이를 반영한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이란 핵 협정(JCPOA) 복원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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