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트럼프 정부가 Anthropic AI를 은행에 권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월가 은행들에 Anthropic의 Mythos AI 모델 테스트를 권고했다. 동시에 같은 회사를 법원에서 상대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오른손이 왼손을 모른다
같은 주에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와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이 월가 은행 임원들을 불러 모아 Anthropic의 신모델 Mythos를 써보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트럼프 행정부는 법원에서 Anthropic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국방부가 Anthropic을 '공급망 위험(supply-chain risk)' 기업으로 지정한 것이 발단이었다.
적을 추천하는 정부. 이 모순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Bloomberg 보도에 따르면, 베센트 장관과 파월 의장은 이번 주 은행 임원들과의 회의에서 Mythos 모델을 보안 취약점 탐지에 활용해볼 것을 권장했다. JPMorgan Chase가 공식 파트너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Goldman Sachs, Citigroup, Bank of America, Morgan Stanley도 현재 테스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월가 빅5 전체가 이 모델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Anthropic이 Mythos를 공개하면서 접근을 제한한 이유도 흥미롭다. 이 모델은 사이버보안 전용으로 훈련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나다는 것이다. 칼이 너무 잘 들어서 함부로 팔지 않겠다는 논리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것이 과장된 마케팅이거나 기업 고객을 겨냥한 영리한 판매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편 영국 금융당국도 Mythos가 금융 시스템에 가져올 리스크를 논의 중이라고 Financial Times가 전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법정 밖에서는 협력, 법정 안에서는 대립
이 상황이 복잡한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아이러니 때문만이 아니다. 갈등의 뿌리를 보면 더 복잡하다.
Anthropic은 자사 AI 모델의 정부 사용 방식에 제한을 두려 했다. 군사적 목적이나 특정 무기 개발에 자사 기술이 쓰이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협상이 결렬되자 국방부는 Anthropic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했다. 현재 양측은 법정에서 맞붙어 있다.
그런데 같은 행정부의 재무부와 연준이 그 회사의 제품을 은행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미국 정부 내에서 AI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른 시각들
은행 입장에서는 사실 정치적 맥락보다 실용성이 우선이다. 금융권은 매일 수천 건의 사이버 공격 시도에 노출된다. Mythos가 실제로 취약점을 잘 찾아낸다면,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규제 당국이 권고까지 했으니 면피도 된다.
보안 전문가 시각에서는 우려가 다르다. AI가 취약점을 '찾는' 데 탁월하다면, 반대로 공격자가 같은 모델을 이용해 취약점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방패와 창이 같은 공장에서 나오는 구조다. Mythos 접근을 제한한다고 해서 악의적 행위자가 유사 모델을 개발하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 금융·IT 업계 관점에서도 이 사안은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5대 시중은행과 카카오, 토스 같은 핀테크 기업들은 이미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월가가 Mythos 수준의 보안 AI를 도입한다면, 글로벌 금융 사이버보안의 기준선 자체가 올라간다. 국내 금융사들도 결국 같은 수준의 대응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두 가지 경로가 가능하다. 하나는 실용주의의 승리다. 법정 다툼과 별개로, 정부-금융권-Anthropic 사이의 실질적 협력이 확대되고, 소송은 조용히 합의로 마무리된다. 다른 하나는 원칙의 충돌이다. Anthropic이 자사 모델의 사용 제한 원칙을 고수한다면, 정부는 더 강한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이는 AI 기업들이 정부와 어디까지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선례가 된다.
영국 규제 당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만약 영국이 Mythos 사용에 제한을 두거나 별도 조건을 부과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AI 규제 방향이 또 한번 갈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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