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160엔 붕괴, 일본이 시장에 손을 댔다
일본 정부가 약 1년 10개월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당 160엔을 넘어선 엔화를 방어했다. 엔저의 구조적 원인과 한국 수출기업에 미치는 파장을 짚는다.
달러당 160엔. 일본 재무성이 참을 수 없는 선이었다.
지난 목요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160.72엔까지 밀렸다. 2024년 7월 이후 최저치였다. 몇 시간 뒤 엔화는 갑자기 5엔 가까이 급등해 155엔대로 복귀했다. 시장이 스스로 움직인 게 아니었다. 일본 정부가 개입했다.
"결정적 행동의 시간이 다가왔다"
개입 직전,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내가 언급했던 결정적 행동의 시간이 마침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외환 담당 차관 미무라 아쓰시는 투기적 움직임에 대한 자신의 경고를 "최후의 대피 경보"라고 불렀다. 이 발언들이 나온 직후 엔화가 급등했다는 사실은, 일본 당국이 말과 실탄을 동시에 동원했음을 시사한다.
금요일 아침, 미무라 차관은 개입 여부에 대해 "그런 사안에 대해 언급할 의향이 없다"며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통상 개입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는다. 월말 자금 결산 데이터가 나오면 그때 확인된다.
일본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은 2024년 7월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이다. 당시 일본은 총 5조 5,300억 엔(약 350억 달러)을 쏟아부어 162엔 근처까지 밀린 엔화를 방어했다. 38년 만의 최저치였다.
왜 엔화는 계속 약해지는가
엔화 약세의 구조적 원인은 단순하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다.
이번 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일본은행(BOJ)은 나란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Fed는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하를 미루고 있고, BOJ는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추가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고 엔화를 파는 캐리 트레이드는 여전히 매력적인 전략이다. 여기에 중동 위기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까지 겹치며 달러 매수세가 강해졌다.
일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금리 차라는 근본 원인을 건드리지 않는 한, 개입은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하다. 2024년 7월에도 그랬다. 당시 5조 엔 이상을 투입했지만, 엔화는 이후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비판론자들은 이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부른다. 반면 일본 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개입의 목적은 환율 수준을 영구적으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빠른 변동성을 억제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기업들이 환율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명분이다.
한국 수출기업, 반사이익인가 경쟁 압박인가
엔저는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변수다. 한국과 일본은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주요 수출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다. 엔화가 약해지면 일본 기업의 달러 표시 수출 가격이 낮아져 가격 경쟁력이 올라간다.
현대자동차, 기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들에게 엔저는 구조적 압박이다. 원·달러 환율이 상대적으로 안정될 경우,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반대로 원화도 약세를 보인다면 영향은 상쇄된다. 결국 원·엔 환율이 핵심 변수다.
현재 원화 대비 엔화 가치는 100엔당 940원대 수준으로, 역사적으로 낮은 편이다. 일본 여행이 저렴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수출 경쟁 측면에서는 한국 기업에 불리한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입은 정당한가, 조작인가
이번 개입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지지하는 쪽은 말한다. 일본 정부는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약하게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빠른 절하를 막으려는 것이다. 이는 많은 국가들이 자국 통화 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정당한 정책 수단이다.
비판하는 쪽은 다르게 본다. 시장이 반영하는 가격을 정부가 강제로 바꾸는 것은 결국 시장 왜곡이다. 더구나 개입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는 관행은 투명성 문제를 낳는다. 이번 개입에 대해 미무라 차관이 "언급할 의향이 없다"고 한 것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정보 비대칭을 허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맥락이다. 미국은 과거 중국의 위안화 관리를 "환율 조작"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의 외환 개입은 같은 잣대로 어떻게 평가될까. 미·일 동맹 관계라는 정치적 변수가 경제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펴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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