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 영상이 20억을 넘었다는 것의 의미
블랙핑크 'How You Like That' 안무 영상이 유튜브 역사상 최초로 20억 뷰를 돌파했다. 숫자 너머, K팝 콘텐츠 전략의 구조 변화를 읽는다.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공연 영상도 아니다. 안무 연습 영상이 20억 뷰를 넘었다.
2026년 5월 27일 오후 2시 32분(한국시간),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댄스 퍼포먼스 영상이 유튜브 20억 뷰를 돌파했다. K팝 안무 영상 최초의 기록이다. 이 영상은 블랙핑크의 유튜브 채널에서 세 번째로 20억 뷰를 넘긴 콘텐츠이기도 하다.
숫자 자체는 놀랍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안무 영상'인가?
댄스 퍼포먼스 영상의 부상: 부산물에서 주력 콘텐츠로
'How You Like That'은 2020년 6월 공개된 곡이다. 당시 블랙핑크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컴백 전략의 일환으로 뮤직비디오와 별도로 안무 영상을 공개했다. 안무 영상은 원래 팬덤의 커버댄스 참고용, 혹은 뮤직비디오 제작 전 공개하는 '티저 대용' 콘텐츠로 여겨졌다. 주력이 아니라 보조 자료였다.
그런데 지금 이 '보조 자료'가 K팝 유튜브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틱톡·릴스·쇼츠로 이어지는 숏폼 생태계가 '댄스 챌린지' 문화를 구조화했다. 팬들이 안무를 따라 하려면 뮤직비디오보다 조명이 밝고 동작이 선명하게 보이는 안무 영상이 훨씬 유용하다. 둘째, 알고리즘은 재생 완료율을 중시하는데, 안무 영상은 뮤직비디오보다 러닝타임이 짧아 완료율이 높게 나온다. 유튜브 추천 피드에 더 자주 올라올 수밖에 없다.
2020년 이후 BTS, 트와이스, 에스파 등 주요 K팝 그룹이 안무 영상을 정규 콘텐츠 라인업에 포함시킨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부산물이 전략이 된 것이다.
'20억'이라는 숫자의 위계
유튜브 20억 뷰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전체 유튜브 역사에서 20억 뷰 이상을 기록한 영상은 30개 남짓이다. 대부분은 루이스 폰시의 'Despacito',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 혹은 유아동 콘텐츠인 'Baby Shark' 같은 글로벌 팝 메인스트림 작품들이다. K팝 그룹의 공식 채널 콘텐츠가 이 반열에 드는 것 자체가 2010년대 초반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블랙핑크는 현재 유튜브에서 20억 뷰 이상 영상을 세 개 보유한 유일한 K팝 그룹이다. 'DDU-DU DDU-DU' 뮤직비디오, 'Kill This Love' 뮤직비디오에 이어 이번 안무 영상까지다. 같은 분기 기준으로 BTS의 'Dynamite' 뮤직비디오가 17억 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블랙핑크의 유튜브 지표는 K팝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맥락을 짚어야 한다. 블랙핑크는 2023년 이후 그룹 활동을 사실상 중단하고 멤버별 솔로 활동으로 전환했다. 제니는 Columbia Records와 계약하며 미국 시장에 독자 진출했고, 리사는 RCA Records 산하에서 솔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룹 명의의 신규 콘텐츠 없이 6년 전 영상이 20억 뷰를 돌파한 것이다. 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블랙핑크라는 IP의 장기 소비력, 그리고 K팝 콘텐츠가 '발매 당시 소비'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의 '지속 소비' 구조로 전환됐다는 것.
플랫폼 전략의 변화와 K팝의 교차점
이 기록이 2026년에 나왔다는 타이밍도 눈여겨볼 만하다. 유튜브는 2025년부터 쇼츠 수익화 정책을 강화하고, 롱폼 콘텐츠의 광고 단가를 조정하면서 K팝 레이블들의 유튜브 의존도에 변화가 생겼다. HYBE는 위버스를 통한 자체 플랫폼 전략을 강화했고, SM엔터테인먼트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 구조 속에서 플랫폼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튜브가 K팝의 '유일한 글로벌 창구'이던 시대는 조금씩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정점에서 세워진 기록이 지금 공식화됐다. 블랙핑크의 20억 뷰는 K팝이 유튜브 알고리즘과 가장 밀착했던 2019~2022년 시기의 유산이다. 지금 K팝 레이블들이 플랫폼 다각화를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유튜브 단일 의존 구조가 만들어낸 뷰 경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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