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부패 스캔들'에 무너진 통합정부…마르코스-두테르테 정면 충돌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이 대규모 부패 스캔들과 두테르테 부통령과의 정치적 결별로 집권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국내 지지율 하락 속에서 그의 정치적 생존 가능성을 분석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대규모 부패 스캔들이 정국을 강타하며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과의 '통합 정부'가 사실상 붕괴했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으나, 국내에서는 부패 의혹과 정치적 분열로 리더십이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정치 위기의 진원지는 부실 홍수 통제 사업에서 시작된 부패 스캔들이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부패를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문제는 단일 기관을 넘어 건설업자, 고위 관료, 심지어 의원들의 '포크 배럴(선심성 예산)' 자금 유용 혐의로까지 확대됐다. 설상가상으로, 스캔들에 연루된 일부 친정부 인사들이 마르코스 대통령이 비정상적인 사업과 예산 삽입을 통해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역공에 나서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두 유력 가문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테르테 가문은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하원의원들의 주도로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기밀자금 유용 혐의로 탄핵 소추되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탄핵을 무효화하며 기사회생했다. 가문의 가장 큰 비극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체포였다. 그는 재임 시절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됐으며, 지난 3월28일부터 헤이그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두테르테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다. 사라 부통령은 2028년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간선거에서는 두테르테의 지원을 받은 후보들이 대거 상원에 입성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는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르코스-두테르테 연합의 균열은 야권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부패 스캔들로 의회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틈을 타, 2022년 선거에서 패배했던 다수의 무소속 후보들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한 반부패 운동 세력도 등장하며 정치 지형에 변화를 예고했다.
격화되는 여론에 밀려 마르코스 대통령은 내각 개편을 단행하고, 예산 심의 과정 생중계와 '반(反)정치 왕조 법안' 제정 등 개혁 조치를 의회에 촉구했다. 특히 반정치 왕조 법안은 이론적으로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을 포함한 현직 정치인들의 재출마를 막을 수 있어, 필리핀 정치의 '게임 체인저'가 될 잠재력을 지닌다. 그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대통령과 하원의장이 공개적으로 해당 법안을 지지한다는 사실 자체는 정치 개혁을 향한 대중의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정치적 위기는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건설 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대규모 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군부 개입에 대한 우려까지 낳았으나, 대통령궁과 군 수뇌부는 즉각 이를 부인했다. 이달 초 마르코스 대통령이 군인 및 제복 공무원의 기본급을 인상한 것은 군부 내 불안정화 시도를 차단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사임 요구를 일축하고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그와 측근들을 향한 의혹은 여전히 그를 탄핵 소추의 위기로 몰아넣거나 대통령의 권위를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그가 2028년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는 다가올 한 해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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