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부터 이기적 유전자까지, 1976년 베스트셀러가 바꾼 세상

전설은 떠났지만 명작은 남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6년은 출판 역사상 가장 기묘하고도 찬란한 해로 기록된다.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작가들이 마지막 유작을 남기고 떠난 자리에, 훗날 세상을 뒤흔들 새로운 천재들의 데뷔작이 나란히 서점에 올랐기 때문이다.

거장의 마지막 인사와 새로운 괴물의 등장

1976년 초, 추리 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미공개 유작이자 미스 마플 시리즈의 최종장인 '잠자는 살인'이 출간되며 전 세계 독자들을 다시 한번 미스터리의 세계로 초대했다. 비슷한 시기,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책 한 권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젊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다. 그는 대중에게 다소 생소했던 유전자 중심의 진화론을 명쾌한 문체로 풀어내며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고딕 호러와 역사 대서사시의 향연

문학적 감수성 또한 폭발적인 해였다. 작가 앤 라이스는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집필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소설은 단순한 공포물을 넘어 불멸과 고독,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며 현대 고딕 호러의 시초가 되었다. 상업적인 성공 면에서는 레온 유리스의 '트리니티'가 압도적이었다. 아일랜드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 이 대서사시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5개월 넘게 지키며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