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내전 종식 로드맵 '나이로비 선언'…희망 속 회의론 교차

케냐 나이로비에서 수단 내전을 종식하고 민주적 전환을 복원하기 위한 새로운 민간 주도 정치 로드맵이 발표됐다. 하지만 수단 내부의 대표성 논란과 국제사회의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2월 16일, 수단의 주요 정당, 무장 단체, 시민사회기구 및 저명 정치인들이 나이로비에 모여 9개 조항으로 구성된 정치 선언에 서명했다. 이들은 내전을 벌이고 있는 수단군(SAF)과 신속지원군(RSF)에 맞서는 '제3의 극(third pole)'으로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지하는 민간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선언에는 2021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압달라 함독 전 총리와, 그동안 엘리트 중심의 정치 합의를 거부해 온 다르푸르 지역의 오랜 무장단체 '수단해방운동(SLM-AW)'의 압델와히드 알 누르 지도자까지 참여해 주목받았다.

내부의 비판: "또 다른 엘리트 정치"

새로운 민간 연합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수단 내부의 평가는 엇갈린다. 수단 연구자 하미드 칼라팔라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나이로비 선언이 수단의 광범위한 시민 운동을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연합은 과거 수단 국민을 대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존 단체들의 복제품에 가깝다"며 "여전히 기존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엘리트 그룹"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2019년 오마르 알 바시르 정권을 무너뜨린 풀뿌리 저항 운동의 주역인 '저항위원회'는 선언문에 언급되었지만, 공식적으로 서명하거나 지지 의사를 밝힌 위원회는 없었다. 이는 현장 민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제사회의 냉담한 반응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제 행위자들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EU의 한 고위 외교관은 "나이로비 로드맵을 통합된 민간 프로세스의 기반으로 보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는 오직 하나의 민간 프로세스만을 원하며, 그것이 아프리카연합(AU)이 주도하는 이유"라면서 "나이로비 선언 같은 다른 움직임은 오히려 주의를 분산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RSF와 SAF에 대항할, 대부분의 수단 시민이 지지하는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극'을 만드는 것입니다."- EU 고위 외교관

전략적 딜레마: 시기상조인가, 역설계인가

전문가들은 나이로비 선언의 전략적 허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미국-아프리카 정책 전문가 카메론 허드슨은 "나이로비 선언이 쿼드의 성명을 '역설계(reverse engineer)'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내적 합의를 구축하기보다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존의 목표에 맞춰 로드맵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허드슨은 또한 휴전 협상과 군 개혁 같은 정치적 변화를 섣불리 연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경고했다. 그는 "쿼드가 무조건적인 휴전을 원한다면,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정치적 개혁 논의는 폭력이 잦아들 때까지 별개의 트랙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제 전략의 핵심에는 해결되지 않은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사회는 SAF와 RSF를 수단의 정치적 미래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어떤 형태의 적대 행위 중단이든 이들 두 군대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간 세력의 통합 노력과 냉혹한 군사적 현실 사이의 간극이 수단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