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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조용한 반란': EU의 대중국 강경 노선,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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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조용한 반란': EU의 대중국 강경 노선,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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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중국 '유럽주의적 헤징' 전략은 EU의 단일 외교 정책에 어떤 균열을 내고 있는가? 지정학적 야망과 경제적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분석합니다.

EU의 대중국 전선, 보이지 않는 균열

유럽연합(EU)이 중국을 향해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이라는 통일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스페인의 독자적인 실리 외교는 이 연대에 숨겨진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브뤼셀의 거대 담론이 각 회원국의 경제적 현실과 충돌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바로미터입니다.

핵심 요약

  • '유럽주의적 헤징' 전략: 스페인은 EU의 대중국 3원칙(협력 파트너, 경제 경쟁자, 시스템적 라이벌)을 수용하면서도,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고 협상과 위험 관리를 우선하는 독자 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 경제적 현실주의의 선택: 스페인은 자국의 핵심 산업인 녹색 전환과 자동차 산업이 중국발 보복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강경책보다는 실리를 택하고 있습니다.
  • EU 단일 정책의 시험대: 스페인의 행보는 EU가 대중국 정책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며, 이는 독일 등 다른 주요 회원국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심층 분석: 브뤼셀의 원칙과 마드리드의 현실 사이

2019년, EU는 중국을 '협력 파트너, 경제 경쟁자, 시스템적 라이벌'로 규정하는 전략적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최근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킹'으로 선회한 것 역시 이 틀의 연장선입니다. 이론적으로 모든 회원국은 이 원칙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사례는 이 원칙이 실제 정책으로 번역되는 과정의 복잡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스페인 정부는 EU의 경제 안보 의제를 지지한다고 공언하지만, 실제 행동은 신중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면적인 대결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나 자국 핵심 산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강경책에는 명확히 선을 긋습니다. 이는 스페인만의 특수한 입장이 아닙니다. 리투아니아처럼 중국과 정면으로 각을 세우는 '최전선' 국가와 달리, 스페인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은 '비최전선' 국가의 전형적인 딜레마를 겪고 있습니다.

왜 스페인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가? 첫째, 스페인은 녹색 전환을 국가 핵심 산업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의 공급망은 중국에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섣부른 강경책은 자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연립정부라는 국내 정치 지형 역시 강경 노선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입니다.

이러한 스페인의 접근법은 거부권 행사와 같은 극단적인 반대가 아닌, '기권', '점진적 이행', '협상을 통한 해결 압박' 등 미묘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EU의 대중국 정책이 만장일치의 선언이 아니라,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27개 회원국 간의 끊임없는 힘겨루기의 산물임을 시사합니다.

PRISM Insight: '무기화된 상호의존성'과 기업의 생존 전략

스페인의 딜레마는 '무기화된 상-호의존성(weaponized interdepend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정 무역, 금융, 기술 네트워크에서 비대칭적 우위를 점한 국가가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는 현상입니다. 중국은 특히 녹색 기술 공급망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국가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와 정책 결정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EU를 단일 시장이나 단일 행위자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브뤼셀의 공식 발표 이면에는 각 회원국의 개별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깊은 공급망 관계를 맺고 있는 친환경 에너지, 자동차, 첨단 제조업 분야의 기업들은 EU의 거시 정책과 함께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핵심 회원국의 미묘한 정책 변화를 면밀히 추적하고 국가별 맞춤형 리스크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결국, EU의 대중국 '디리스킹'은 단일한 속도로 진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스페인과 같은 국가들의 '속도 조절'은 EU 전체의 정책 방향에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모색하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입니다.

결론: 이상과 현실의 간극, EU의 미래를 묻다

스페인의 '유럽주의적 헤징'은 EU가 직면한 근본적인 딜레마, 즉 지정학적 야망과 경제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중국에 대한 '온건' 혹은 '강경'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EU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21세기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어떻게 내부의 이질성을 관리하고 실용적인 단일 외교 정책을 구축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EU의 대중국 정책은 브뤼셀의 선언이 아닌, 마드리드와 같은 수도들의 현실적인 계산에 의해 그 향방이 결정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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