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화재 참사: 159명의 비극 너머, 도시의 '주택 위기'를 조명하다

홍콩 타이포구의 왕푹 코트(Wang Fuk Court)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을 넘어, 도시 전체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주택 문제의 민낯을 드러냈다. 참사 수 주가 지났지만, 생존자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번 화재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도시 중 하나인 홍콩의 사회적 안전망과 거버넌스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분석된다.

화재는 정부 보조금으로 주택을 마련한 서민들이 거주하는 공공주택 단지에서 발생해 충격을 더했다. 홍콩 정부와 민간 비정부기구(NGO)들이 임시 주거와 장기 지원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5년 9월 기준, 홍콩의 공공 임대주택 평균 대기 기간은 이미 5년에 육박한다.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집'이다.

홍콩의 공공주택 프로그램은 1953년 성탄절, 섹깁메이(Shek Kip Mei) 지역 판자촌에서 발생해 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낳은 또 다른 대형 화재를 계기로 1954년에 시작됐다. 현재는 홍콩 전체 인구의 약 30%, 즉 200만 명 이상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핵심적인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살인적인 집값으로 인해 시장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필수적인 주거를 제공하며 불평등을 완화하는 순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여러 도전에 직면해왔다. 소득 상한을 넘는 입주자들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고, 노숙자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홍콩 사회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공식 등록된 노숙인만 1,564명에 달하며, NGO들은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주택 위기는 홍콩 사회 전반을 짓누르는 구조적 문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19년 대규모 시위의 배경 중 하나로 “주택 및 토지 공급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불만을 지적한 바 있다. 홍콩중화총상회(CGCC) 역시 토지 공급 부족이 “홍콩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병목 현상”이라며 기업 비용 상승과 해외 투자자 및 인재 유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2025년 입법회 선거가 화재의 그림자 속에서 치러졌다는 분석이 많지만, 이번 참사가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다. 32% 미만의 낮은 투표율은 화재 때문이 아니라, 주택 문제를 포함한 뿌리 깊은 불만이 이미 존재했음을 방증한다. 화재는 새로운 불만을 촉발한 변수가 아니라, 기존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