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불가능한 일": 세계 최고 스파이웨어 추적자, 시티즌랩이 미국을 감시하는 이유

20년간 러시아와 중국의 디지털 감시를 추적해 온 남자가 있다. 하지만 이제 그의 가장 큰 걱정은 미국이다. 2025년 4월, 세계적인 사이버 감시 연구기관 시티즌랩(Citizen Lab)의 소장 로널드 다이버트(Ronald Deibert)는 토론토 자택에 모든 전자기기를 두고 비행기에 올랐다. 일리노이주에 도착해서는 택시를 타고 쇼핑몰 애플스토어로 직행해 새 노트북과 아이폰을 구매했다. 자신의 작업이 감시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기에, 개인 기기 압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이버트 소장은 "나는 매 순간 내 정확한 위치까지 감시당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움직인다"고 말한다.

'시민사회를 위한 방첩기관', 시티즌랩

다이버트가 2001년 설립한 시티즌랩은 토론토 대학교 소속 연구기관으로, 스스로를 '시민사회를 위한 방첩기관'이라 칭한다. 정부나 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해 연구 보조금과 민간 기부로 운영된다. 이들은 공익을 위해서만 사이버 위협을 조사하는 몇 안 되는 기관 중 하나로, 지난 20년간 가장 심각한 디지털 권력 남용 사례들을 폭로해 왔다.

시티즌랩을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는 2009년 발표한 '고스트넷 추적'(Tracking GhostNet)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중국에 기반을 둔 디지털 스파이 네트워크가 달라이 라마 사무실을 포함해 100개국 이상의 해외 공관과 외교관 사무실에 침투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시티즌랩은 180건 이상의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전에 그의 주변인들이 상업용 스파이웨어의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최초로 폭로하기도 했다.

한때 민주주의의 상징, 이제는 감시의 대상

다이버트 소장은 수년간 미국을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으로 여겨왔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기둥이 공격받고 있다"며 "수십 년간 결함에도 불구하고 헌법적 민주주의의 규범을 지켜왔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위험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당선 이후 많은 캐나다인이 미국 여행을 기피했지만, 그는 오히려 미국 방문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우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체적인 조치들로 인해 더욱 깊어지고 있다. 2025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스파이웨어 업체 파라곤(Paragon)과의 200만 달러 규모 계약을 재개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작업 중단 명령이 내려졌던 계약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월 연방 기관 내 낭비와 부정을 방지하는 정부 기구인 '감찰관 협의회'의 예산을 삭감했고, 행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대학의 연방 기금을 동결하겠다고 위협했다. 다이버트는 이런 조치들이 시티즌랩과 같은 감시 기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캐나다이기에 가능한 감시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신디 콘(Cindy Cohn) 전무이사는 시티즌랩의 캐나다 내 위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티즌랩이 토론토에 기반을 두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자유롭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법치와 인권 보호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독립성 덕분에 시티즌랩은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권위주의 정권뿐만 아니라, 이제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디지털 권력 남용까지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