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와 '택시 드라이버'가 벌써 50주년? 1976년, 시대를 초월한 영화 8편

당신이 기억하는 그 명장면이 벌써 반세기 전의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2026년이면 50주년을 맞는 1976년 개봉작들은 단순한 고전이 아니다. 전쟁의 후유증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던졌다.

시대의 불안과 희망을 담은 스크린

1970년대 미국 사회는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전쟁의 상흔으로 깊은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은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더스틴 호프먼과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 사건을 파헤치는 두 기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특종 기사를 넘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미스터리를 그려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2010년에는 미 의회도서관 국립영화등기부에 영구 보존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시청률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마저 내던지는 미디어의 광기를 그린 <네트워크> 역시 시대의 냉소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뉴스 앵커가 생방송에서 자살을 예고하며 벌어지는 소동은 오늘날의 '어그로'와 소셜 미디어 중독 현상을 예견한 듯하다. 이 작품은 4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언더독과 안티히어로, 새로운 주인공의 탄생

1976년은 새로운 유형의 주인공을 탄생시킨 해이기도 하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한 <록키>는 무명의 복서가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영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언더독' 서사를 만들어냈다.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을 포함해 3개를 수상했다.

반면,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 트래비스 비클이 도시의 범죄에 분노하며 자경단원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거울을 보며 "나한테 말하는 거야?(You talkin’ to me?)"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영화사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영화는 날것 그대로의 리얼리즘으로 큰 호평을 받았으며, 1994년 국립영화등기부에 등재되었다.

장르의 경계를 넓힌 공포와 코미디

1976년은 장르 영화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해였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캐리>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소녀가 염력을 사용해 복수하는 이야기로, 프롬 파티에서 돼지 피를 뒤집어쓴 장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된다. 이 영화는 드물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공포 영화로 기록됐다. 또 다른 공포 영화 <오멘>은 죽은 아기 대신 적그리스도를 입양하게 된 외교관의 이야기로,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거대한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렸다.

가족 코미디 장르에서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프리키 프라이데이>가 엄마와 딸의 몸이 바뀌는 설정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꼴찌 야구단>은 오합지졸 리틀야구팀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 스포츠에 과몰입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