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칩 위에서 시작된 '14일간의 임신'… 불임 치료의 블랙박스가 열린다

인간의 배아가 자궁 내벽에 조심스럽게 파고들며 미래의 태반이 될 첫 번째 촉수를 뻗는다. 임신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착상'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몸속이 아닌, 베이징의 한 실험실, 작은 마이크로플루이딕 칩 위에서 펼쳐졌다. 과학자들은 이 장면을 현미경으로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번 주 셀 프레스(Cell Press)에 발표된 3편의 논문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유럽 공동 연구진은 인간의 초기 임신 과정을 실험실에서 가장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체외수정(IVF) 센터에서 얻은 인간 배아를 자궁 내벽 세포로 만든 3차원 오가노이드(organoid)와 결합시켜 착상 과정을 구현했다. 이는 불임 치료의 가장 큰 장벽을 이해하고 IVF 성공률을 높일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착상, 그 미지의 영역을 들여다보다

지금까지 배아 착상 과정은 자궁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블랙박스'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베이징 줄기세포·재생의학 연구소의 홍메이 왕(Hongmei Wang) 박사는 "인간 배아 착상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연구는 주로 동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졌다.

연구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궁 오가노이드를 활용했다. 자궁 내벽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실제 자궁과 유사한 환경을 만든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메디컬 센터의 준 우(Jun Wu) 교수는 "배아와 자궁 내막 오가노이드를 함께 배양한 것이 세 논문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IVF 성공률을 높일 열쇠

IVF 시술의 가장 큰 실패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착상 실패다.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해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연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스탠포드 대학의 마테오 몰레(Matteo Molè) 박사는 "착상이 임신의 장벽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실험실에서 이를 모델링할 수 있다면 성공률을 높일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상업적 활용 움직임도 시작됐다. 휴스턴의 심브리오 테크놀로지스(Simbryo Technologies) 같은 스타트업은 환자의 자궁 내벽 조직으로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블라스토이드 착상 여부를 시험하는 개인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를 통해 환자의 자궁이 임신에 적합한 상태인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베이징 팀은 반복적으로 IVF에 실패한 여성들의 조직으로 만든 오가노이드에 1,119종의 승인된 약물을 테스트했다. 그 결과, 일부 자외선 차단제 성분인 아보벤존(avobenzone)이 블라스토이드의 착상률을 기존 5%에서 25%까지 높이는 효과를 보였다. 연구팀은 적절한 약물을 찾아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인공자궁의 서막인가?

현재 오가노이드 모델은 면역 세포나 혈액 공급 기능이 없어 아직 한계가 명확하다. 베이징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칩에 미세 혈관과 펌프를 추가해 원시적인 순환계를 구현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는 배아를 윤리적 허용선인 14일 이상 키울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이 기술이 완전한 체외발생(ectogenesis), 즉 인공자궁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준 우 교수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 기술이 체외 발생과 관련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공자궁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은 공상과학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모든 실험은 14일 규칙에 따라 엄격히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