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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처칠의 비밀 심장마비부터 국왕의 형제 암살까지, 5가지 충격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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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처칠의 비밀 심장마비부터 국왕의 형제 암살까지, 5가지 충격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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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파티 5가지. 적도 기니의 학살극부터 처칠의 비밀 심장마비, 정복왕 윌리엄의 대관식 화재까지, 축제가 비극으로 변한 충격적인 실화를 소개합니다.

성탄절의 악몽: 축제가 비극으로 변한 순간들

국가 수장이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보통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형화된 행사입니다. 기껏해야 장식가가 트리에 정성을 덜 쏟았다는 스캔들 정도가 전부일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끔찍한 비극의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평화와 축복의 상징인 크리스마스가 피와 음모, 그리고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얼룩졌던 역사 속 다섯 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기니의 대학살: 산타 복장의 처형인들

적도 기니의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10년간 기이한 방식으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나라의 모든 주술사에게 그들의 지팡이를 바치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그들의 마법을 한데 모아 자신이 휘두르기 위함이었습니다. 통치 말년에는 수집한 사람의 머리뼈를 곁에 두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셌습니다.

1969년 크리스마스, 응게마는 반대파 인사 150명을 수도 말라보의 축구 경기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경기장 스피커에서는 메리 홉킨의 노래 'Those Were the Days'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경비원들은 총을 꺼내 150명의 포로를 모두 사살했습니다.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응게마는 이 행사를 위해 경비원들에게 산타클로스 복장을 입혔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실은 다른 기록에서는 빠져있어 진위가 불분명하지만, 이 이야기가 소름 끼치는 비극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응게마는 결국 축출되어 처형당했지만, 그 전에 국고를 자신의 침실로 옮겨 돈에 불을 지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2. 처칠의 비밀: 백악관에서 찾아온 심장마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1941년 크리스마스를 백악관에서 보냈습니다. 사실상 그가 자초한 방문이었습니다. 진주만 공습 불과 몇 주 후, 처칠은 미국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결정적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영국은 미국보다 먼저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미국이 태평양 전선에만 집중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유럽의 거대한 전쟁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은 함께 크리스마스 미사에 참석하고, 몇 달 전 개봉한 영화 '말타의 매'를 개인적으로 관람했습니다. 바로 그때, 처칠에게 심장마비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조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습니다. 그의 주치의는 총리가 심장마비를 겪었다고 개인적으로 진단했지만, 처칠 자신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만약 영국 정부 수장이 '불확실한 미래를 가진 심장병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전쟁의 결과와 세계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은 철저히 지켜졌고, 처칠은 이후 몇 차례 뇌졸중을 겪었지만 또 다른 심장마비는 겪지 않았습니다.

배경 정보: 1941년 12월, 처칠의 미국 방문은 '아카디아 회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담의 핵심 목표는 나치 독일을 먼저 격파하는 '유럽 우선(Europe First)' 전략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처칠의 건강 문제는 이러한 중대한 외교적 협상에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3. 스웨덴 국왕의 연회: 형제를 굶겨 죽인 잔혹극

1317년 스웨덴의 국왕은 비르예르 망누손이었습니다. 그는 10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두 남동생 에리크와 발데마르 공작과 오랜 기간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한때 동생들이 노르웨이로 도망쳤지만, 비르예르가 곧 노르웨이를 정복하면서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동생들은 '하투나 게임'이라 불리는 쿠데타를 일으켜 형을 몰아내려 시도했고, 국왕은 나라의 일부를 떼어주는 것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듯했습니다.

1317년 크리스마스, 비르예르는 두 동생을 연회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성에 공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동생들의 경비병들을 밖에서 대기시켰습니다. 성대한 연회가 끝나고 동생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자, 비르예르는 쇠뇌를 든 부하들과 함께 나타나 그들을 던전으로 끌고 갔습니다. 두 형제는 다시는 던전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재산을 처분하는 유언장에 서명한 뒤, 감옥에서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연대기 작가에 따르면, 비르예르는 동생들을 체포하며 "하투나 게임을 기억하는가?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만, 14세기 스웨덴의 많은 기록처럼 이 또한 명확히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4. 지미 카터의 고충: 파티를 중단시킨 '고통'

단임 임기의 절반을 지났을 무렵,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치질 문제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1978년 크리스마스 파티를 주최하던 그는 극심한 통증 때문에 갑자기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그는 모여든 수천 명의 손님에게 이 민망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이 이전에 그의 치질 문제를 공개한 적은 있었지만, 그가 파티를 떠난 진짜 이유를 인정한 것은 2001년에 쓴 회고록에서였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1979년, 증상이 악화되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는 갑작스러운 안도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이를 '이집트인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카터의 건강 문제를 전해 듣고 자국민에게 미국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는데, 이 기도가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가져왔다고 믿은 것입니다.

5. 정복왕 윌리엄의 대관식: 축복이 화염으로

정복왕 윌리엄1066년 크리스마스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렀습니다. 행렬이 도착하고, 성가가 울려 퍼지고, 새로운 왕이 단상에 오르는 등 대부분의 의식은 예상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주교가 모인 귀족들에게 윌리엄을 왕으로 받아들이겠냐고 묻자, 귀족들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우렁찬 환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들은 이 소란을 듣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습니다. 그들은 대관식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고, 누군가 윌리엄을 암살하려 한다고 성급히 결론 내렸습니다. 그들은 왕을 구하러 달려가는 대신, 복수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사원 주변의 도시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화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연기가 사원 안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대관식은 순식간에 폭동 현장으로 변했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축복으로 가득해야 할 자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것입니다.

PRISM Insight: 이 충격적인 이야기들은 평화와 축하의 순간이 역설적으로 정치적 긴장, 개인의 나약함, 그리고 치명적인 오해가 폭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역사는 거대한 전략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고 종종 혼란스러운 인간적인 순간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날이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것입니다.

— PRISM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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